13 9월, 2007

결혼은 미친짓이다, 이만교


아이들이 상상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나
우리 어머니가 섬기는 <주님>이거나
혹은 너의 어머니가 잊지 못하는 네 아버지의 이미지 같은 것 말야
그런 것들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일종의 후광이 있어.


아우라 같은 것 말야?


응. 적어도 두 가지 중에 하나는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지.
영원히 그녀만을 사랑할 것 같은 낭만적 환상,
아니면 결혼을 하면 훨씬 더 안락한 삶을 누릴 것 같은 사회 경제적 환상, 그런데-


그녀가 이불을 끌어 덮으며 내가 하려는 말을 가로챘다.

결혼에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지.

- 이만교, <결혼은 미친짓이다> 中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로 뒤에 읽은 작품. 영화나 소설이나 기본적인 스토리 구조는 같다. 소소한 에피소드나, 차이점이라면 캐릭터의 미묘한 차이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묘사 정도랄까. 소설 속 준영은 영화 속 준영보다 훨씬 설교가 많아 고루해 보였다. 소설 속 연희는 영화 속 연희보다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느낌이 들었다. 엄정화 감우성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인지, 우선은 영화 속 캐릭터들이 훨씬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도 그 나름대로 소설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 그들의 이야기는 ‘결혼’에 대한 얘기를 좀 더 비중있게 신중히 다루는 느낌이랄까, 그러기 위해서 준영은 좀 더 설교를 해야 했고 연희는 좀 더 아이같을 필요가 있었을지도.

영원히 한 사람만을 사랑할 것이라는 다짐, 결혼을 하면 훨씬 더 안락해질거라는 생각, 두 가지 환상에 기대 이루어지는 결혼인데 이제 그 환상마저도 없는 결혼이라는 얘기를 그들은 하고 있다. 하지만 환상에 기댄 선택이 비단 ‘결혼’ 뿐은 아니지 않을까. 인생을 살아가며 접하게 되는 중요한 선택들 – 어느 대학을 갈 건지, 어떤 전공을 선택할 건지, 졸업한 후에 어떤 직업을 택할 건지 등등 – 은 모두 어느 정도의 환상에 기댄다. 결국 그 환상이 허상이라는 걸 사람들은 어렴풋이 – 혹은 명확히 – 알고 있다. 조금은 달콤한 꿈에 젖어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인생의 작은 사건을 더욱 예쁘게 포장해 줄 포장지 역시도.


12 9월, 2007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상처 입는 것에 대해 얘기하자면

물수건으로 입술을 닦고 나서 코우지가 말했다.

누구든 태어나는 순간에는 상처입는 일이 없어.
나,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예를들어 어딘가 불편한 몸으로 태어나거나,
병약하거나, 몹쓸 부모를 만난다 해도,
녀석이 태어난 순간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이 태어나지, 굉장하지 않아?
그런데, 그 다음은 말야, 상처 뿐이라고 할까, 죽을 때까지,
상처는 늘어날 뿐이잖아, 누구라도.


토오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주는 게 좋은 건 아니잖아.

코우지는 다시 입 끝을 움직여 웃었다.
그 웃음이 토오루는 어쩐지 딱해 보였다.
상처를 늘리고 있는 것은 코우지 쪽인 양.
코우지는 세 잔째 맥주를 주문했다.

상처를 주어도 좋다는 말이 아니잖아.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거야.


담배를 끄고 불을 붙인다.

누구든 상처입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상처입는 것에 저항하는거야, 여자들은.


- 에쿠니 가오리, <도쿄타워> 中



상처를 입는 것이 당연하다고 되뇌어도, 여전히 상처입는 것은 쓰라리고 아프다. 당연하잖아.

코우지와 토오루, 두 20살 남자아이들이 주인공이고 둘은 나이 많은 유부녀 여자를 만난다. 정말 삼류 불륜소설이나 다름없는 소재를 가지고 이 소설은 ‘사랑’을 얘기하고, ‘둘이 진짜 사랑했을 수도 있잖아’를 가정한다. 실제 가능하던 하지 않던, 이건 소설이니까. 하지만 다시 보면 그 가정은 토오루 쪽에만 해당되는 듯. 나이 어린 여자친구와 유부녀를 동시에 다른 패턴으로 만나는 코우지와 대조되어 토오루의 사랑이 더욱 빛나는 느낌.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 라고 반문해도, 이렇게 예쁘게 사랑이라고 써 내려간 문장에 그런 반항은 어울리지 않는 느낌.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냥 이 스토리에 빠져본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시후미, 매력적이지만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키미코, 착하고 귀여운 여자친구 유리. 어떤 모습일까,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영화화는 좀 실망스러웠다. 깔끔하게 끝난 스토리를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 원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결말을 맺었고, 환상을 갖고 있었던 여자캐릭터들에 대한 실사도 기대에 못미쳤다. 시후미는 적어도 훨씬 더 아름다우면서 소녀적이었으면 했는데. 게다가 어떻게 봐도 코우지와 토오루는 20살로 보이지 않았기때문에.


11 9월, 2007

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나는 애인에게 묻곤 한다.
‘내가 죽으면, 당신 슬플까?’ 라고.
‘그야 슬프지. 아주 슬프지.’

애인이 그렇게 대답하면 나는 이어 ‘왜?’ 라고 묻는다.
애인은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럼 당신은?’ 하고 내게 되묻는다.
몸을 시트로 휘감고 손가락으로 내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내가 죽으면, 당신 안 슬프겠어?’
‘안 슬퍼.’ 하고 나는 대답한다.
옛날에 아빠가 가르쳐주었던 것 처럼.
‘죽는 건 슬픈 일이 아니야’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애인은 죽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당신은 죽지마’ 라고.
‘이런 바보’ 애인은 희미하게 미소짓는다.
내 머리를 끌어안고 내 볼에 소리내어 키스를 해 준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바란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애인에게 ‘걱정할 것 없어.’ 란 대답을 듣고 싶었다.
‘영원히 죽지 않을 테니까’ 란 대답을
하지만 물론 애인은 그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 에쿠니 가오리, <웨하스 의자> 中



도무지 지루해서 읽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읽고난 뒤에, 하긴 지루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다, 생각은 들었다. 소설 속의 시간은 별다른 사건 없이 그저 조용히 흘러갈 뿐이니. 물론 나는 이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소설 속의 ‘나’에게서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쁘지만 그저 보고 있어야만 하는, 막 부서질 것 같은 웨하스 의자. 태연함으로 가장하며 어른스레 빙긋- 웃고 있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미숙하고 불완전한 모습. 그런 그녀를 지탱해 준 것은 절망과도 같은 사랑, 사랑과도 같은 절망. 불행하다. 어째서 사랑하는데도 절망해야 하는 것인지. 하지만 세상엔 그런 종류의 사랑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사랑의 색깔에 문제가 있는 건 결코 아니다. 미숙하고 불완전한, 막 부서질 것 같은 그녀의 사랑이기에 그랬다. 끝나지 않은 사랑의 끝을 헤아리고, 혼자 남아있을때의 외로움에 허덕이며. 정작 사랑하고 행복할 시간마저 그 절망들이 잠식해 버린 것. 하지만 마지막의 죽음이 오히려 희망이 되고 만다. 사랑은 절망이고, 죽음은 희망.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희망이 된 죽음으로, 그녀의 사랑이 더이상 절망이 아니길 바란다.
카프리에서의 휴가가, 즐겁고 행복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