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10월, 2008

온, 유시진

내가 본 당신은 섬세하게 세공된 수정 조각 같았습니다.
사물을 그대로 반사하지도 그대로 흡수하지도 않고
자신만의 세계와 법칙 안에 있는, 순수하고 고귀한 수정.
모든 빛이 그 곳에서 머물렀지요.
혹해서 바라보고 있으면 부서지고 일그러진 내 모습이 비쳐 보였어요.



- 용서한다 나단. 나도 용서해주겠니?
- 무엇에 대해 용서해 달라는 거지요? 안 보았으면 좋았을 빛을 보게 한 것?
아니면 그것이 차가운 빛이었다는 것?
- 내 무지와 무관심으로 너를 괴롭혔어.
- 내가 나를 괴롭혔지요. 당신은 그저 사미르였고.
그리고 사미르의 모든 것이 사실 내겐 완벽하게 아름다웠어요.

- 유시진, <온> 中



이런 이야기가 너무 좋아.
연애감정으로서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닿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미칠 듯한 동경심
그리고 거기에 맞닿은 증오. 역설적인 그 감정을, 나단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평온한 결말. 아아 좋다.


18 10월, 2008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드미트리에게 듣자니까 당신은 일본에서 꽤 유명한 작가라고 하던데 정말이에요?” 하고 발렌티나가 내게 물었다. 간단한 인사와 날씨에 대한 의례적인 대화를 주고받은 후, 조금 의심스럽다는 듯 그녀가 말을 꺼낸 것이다. 드미트리는 내게 그녀를 소개해 준 그리스 사람이다. 드미트리가 그녀에게 전한 정보에 아무래도 오해나 정서적인 혼란이 있었는지, 그녀는 나를 마치 타니자키나 마시마 같은 반고전적인 문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색이 바랜 티셔츠에 낡은 진바지 차림으로 나타나자, 그녀는 조금 맥이 빠진 듯 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 딱히 내 탓은 아니지만 –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가끔 생각하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나한테는 작가로서의(혹은 예술가로서의) 독특한 분위기 같은 것이 약간 부족한 것 같다. 일본에 있을 때도 빵집이나 수퍼마켓의 점원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았다. 한창 물건을 고르고 있는 중에 다른 손님에게서 “이봐요, 고춧가루 어디 있죠?” 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그럴 경우 나는 어디에 있다고 가르쳐 주기도 한다). 이런 일을 겪는 것은 꼭 복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다 검정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호텔 로비에 서 있으면, 낯모르는 아저씨가 다가와 “이보게, 커피숍은 어디 있나?” 하고 묻는다. 이렇다 보니 나는 발렌티나를 탓할 수가 없다. 이른바 작가 특유의 분위기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온천이나 유전처럼 있는곳에는 늘 있고 없는 곳에는 전혀 없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中



처음으로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있다! 아아 에세이도 정말 좋구나 싶다. 소설만 읽다 보니, 하루키 작가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도 않았고 솔직히 관심도 별로 없었는데. 에세이를 읽으니 작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느낌이다. 특히 저 부분이 너무 웃음이 나고 또 좋아서. 하루키는 전에도 언론 노출을 극도로 피한다는 얘길 들었다. 사진도 한정된 몇장의 사진만 공개하고. 그래서 길을 걸어도 아무도 자길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좋다고. 글을 읽으니 정말, 관광객이 모두 떠난 비수기의 그리스 섬에서 소설을 쓰며 소박한 삶을 보내는 모습이 꼭 어울린다. 아아. <먼 북소리>를 다 읽으면 소설을 모두 읽은 다음에 다시 에세이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스와 시실리의 부분까지를 읽었다. 그리스 사람들의 활기찬 생명력이 책장 밖까지 느껴지는 듯. 아까 소박한 삶이라고 했지만 음식에 대한 묘사를 보면 마냥 소박하지만은 않다는.

지금은 이탈리아의 조깅얘기를 읽고 있는데 정말 재밌다.


05 6월, 2008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먼 옛날의 신화 세계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었어” 하고 오시마 상이 말한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어?”

“모릅니다” 하고 나는 대답한다.

“옛날에는 세계가, 남자와 여자가 오늘날같이 따로따로 떨어져있지 않고, 남자와 남자가 또는 남자와 여자가, 그 밖에도 여자와 여자가 한 몸으로 등이 맞붙어 있어서 마주 보지는 못하고, 서로 등짝이 딱 붙은 채 살아가는 세 종류의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애당초 인간은 오늘날과는 달리, 두 사람이 한 몸으로 붙어 있게 만들어졌었다는 거지. 그래도 모두 만족하고 아무 말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하느님이 칼을 써서 그 모든 사람들을 반쪽씩 두 사람으로 갈라놓았어. 모든 사람을 두 조각 내 버렸다는 거지. 그 결과로 오늘날의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칼에 맞아 생긴 일직선으로 된 흔적이 등짝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요행히 제대로 자기 짝을 찾게 되면 해피엔딩의 사랑이 되지만, 영영 찾지 못하거나 찾았다 싶어 결합했는데 아니다 싶으면 다시 영원한 이별이 된다는 그럴듯한 얘기지. 그 결과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만이 있게 되어서, 사람들은 원래 한 몸으로 붙어 있던 반쪽을 찾아 우왕좌왕하면서 인생을 보내게 되었대.”

“왜 하느님은 그런 짓을 한 거죠?”

“인간을 두 쪽으로 쪼개는 것? 글쎄,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몰라. 하느님이 하는 일은 대체로 잘 알 수가 없지. 화를 잘 내고, 뭐랄까, 너무 이상주의적인 경향이 있고 말이지. 짐작으로는 아마 어떤 벌 같은 걸 받은 게 아니었을까? 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처럼 말이야.”

“원죄” 하고 나는 말한다.

“그렇지, 원죄” 하고 오시마상이 말한다. 그리고 긴 연필을 가운뎃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균형을 잡으려는 듯이 천천히 흔든다.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간이 혼자 살아가는 것은 무척 힘들다는 거야.”

-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中



너무 당연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헤드윅>의 넘버 The origin of love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플라톤의 <향연> 이라는 것을 읽어봐야 할까? 세상엔 내가 모르는 스토리가 정말 많구나.

<해변의 카프카>는 여러가지 책을 언급한다. 15살짜리 카프카에 비해 나의 독서량이 너무나도 얄팍하다. 우선은 카프카의 책을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24 5월, 2008

댄스 댄스 댄스, 무라카미 하루키 - 남자의 성욕



  “저기요, 남자란 그렇게도 강렬하게 여자를 품고 싶어하나요?” 라고 어느 날 해변에 누워 있을 때 갑자기 유키가 내게 물었다.
  “그래. 그 강도에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원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남자라는 것은 여자를 품고 싶어하게 되어 있어. 섹스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겠지?”
  “대충 알고 있어요” 라고 유키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욕이라는 게 있어” 라고 나는 설명했다. “여자하고 자고 싶어하는 거지. 자연스러운 일이야. 종족 보존을 위해‥‥.”
  “종족 보존 따위에 대해 묻고 있는 게 아니에요. ‘생물’ 시간 강의같은 소리는 하지 말아요. 그 ‘성욕’ 에 대해 묻고 있어요. 그게 어떤 것인가를.”
  “이를테면 네가 새라고 하자” 라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일을 아주 좋아한다고 하자.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자주 날 수가 없어. 날씨나 풍향이나 계절에 따라 날 수 있을 때와 날 수 없을 때가 있거든. 하지만 날 수 없는 날이 계속되면, 힘도 남아돌고 초조해져. 자신이 부당하게 깎아내려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왜 날 수 없을까 하고 화도 나고 말야. 이런 느낌을 알 수 있겠어?”
“알 수 있어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언제나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그럼 얘기는 간단해. 그게 성욕이야.”

-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中



하루키에 소설에는 다양한 비유들이 등장한다. 미묘한 뉘앙스를 모두 적절한 비유로서 대체한다. 그런 공기의 느낌을 말하는 거구나 하고. 지금 읽고 있는 부분에서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남자의 성욕’ 에 대한 비유. 구체적이면서도 그럴싸 해. 본인 스스로도 이렇게 설명해도 되는 것일까 하고 갸우뚱 거렸지만, 어차피 비유와 실제 현실과의 차이는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


23 5월, 2008

양을 쫓는 모험, 무라카미 하루키 - 도넛의 구멍


도넛의 구멍을 공백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존재로 받아들이느냐는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인 문제고, 그 때문에 도넛의 맛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 中



아직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댄스댄스댄스>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꾸 읽어대니 오히려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 문장은 여기에 나왔던 거였나? 아님 저기에? 정말 한 사람의 인생을 훑고 있는 것 같아. 이렇게 긴 호흡에서 한사람의 캐릭터를 일관성있게 유지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거라고 생각해.

지금의 나는 <댄스댄스댄스> 1권의 끝부분에 머물러 있다. 왠지 던킨도너츠와 커피로 아침식사를 해야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