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0월, 2008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드미트리에게 듣자니까 당신은 일본에서 꽤 유명한 작가라고 하던데 정말이에요?” 하고 발렌티나가 내게 물었다. 간단한 인사와 날씨에 대한 의례적인 대화를 주고받은 후, 조금 의심스럽다는 듯 그녀가 말을 꺼낸 것이다. 드미트리는 내게 그녀를 소개해 준 그리스 사람이다. 드미트리가 그녀에게 전한 정보에 아무래도 오해나 정서적인 혼란이 있었는지, 그녀는 나를 마치 타니자키나 마시마 같은 반고전적인 문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색이 바랜 티셔츠에 낡은 진바지 차림으로 나타나자, 그녀는 조금 맥이 빠진 듯 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 딱히 내 탓은 아니지만 –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가끔 생각하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나한테는 작가로서의(혹은 예술가로서의) 독특한 분위기 같은 것이 약간 부족한 것 같다. 일본에 있을 때도 빵집이나 수퍼마켓의 점원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았다. 한창 물건을 고르고 있는 중에 다른 손님에게서 “이봐요, 고춧가루 어디 있죠?” 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그럴 경우 나는 어디에 있다고 가르쳐 주기도 한다). 이런 일을 겪는 것은 꼭 복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다 검정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호텔 로비에 서 있으면, 낯모르는 아저씨가 다가와 “이보게, 커피숍은 어디 있나?” 하고 묻는다. 이렇다 보니 나는 발렌티나를 탓할 수가 없다. 이른바 작가 특유의 분위기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온천이나 유전처럼 있는곳에는 늘 있고 없는 곳에는 전혀 없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中



처음으로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있다! 아아 에세이도 정말 좋구나 싶다. 소설만 읽다 보니, 하루키 작가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도 않았고 솔직히 관심도 별로 없었는데. 에세이를 읽으니 작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느낌이다. 특히 저 부분이 너무 웃음이 나고 또 좋아서. 하루키는 전에도 언론 노출을 극도로 피한다는 얘길 들었다. 사진도 한정된 몇장의 사진만 공개하고. 그래서 길을 걸어도 아무도 자길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좋다고. 글을 읽으니 정말, 관광객이 모두 떠난 비수기의 그리스 섬에서 소설을 쓰며 소박한 삶을 보내는 모습이 꼭 어울린다. 아아. <먼 북소리>를 다 읽으면 소설을 모두 읽은 다음에 다시 에세이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스와 시실리의 부분까지를 읽었다. 그리스 사람들의 활기찬 생명력이 책장 밖까지 느껴지는 듯. 아까 소박한 삶이라고 했지만 음식에 대한 묘사를 보면 마냥 소박하지만은 않다는.

지금은 이탈리아의 조깅얘기를 읽고 있는데 정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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