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3월, 2009

태엽감는 새,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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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태엽 감는 새님. 태엽 감는 새님은 자기 자신을 비우면서까지 잃어버린 구미코 씨를 구하려고 애썼어요. 그리고 ‘어쩌면’ 구미코 씨를 구할 수도 있었지요, 그렇죠? 태엽 감는 새님은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구했어요. 하지만 자신은 구하지 못한 거에요. 그리고 다른 누구도 태엽 감는 새님을 구할 수는 없었어요. 태엽 감는 새님은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데에 힘과 운명을 있는 대로 모조리 써버린 거에요. 그 씨앗은 남김없이 어딘가 다른 곳에 뿌려 졌어요. 주머니 속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런 불공평한 일이 어딨어요? 난 진심으로 태엽 감는 새님을 동정하고 있어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건 결국 태엽감는 새님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던 거에요. 내 말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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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의 사격 솜씨가 서툴렀던 건 아니네. 단지 자네는 나를 죽일 수가 없는 거지. 자네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네. 그래서 자네는 기회를 놓친 거라네. 안됐지만 자네는 내 저주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겠군. 알겠나? 자네는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질 수 없네. 자네는 앞으로 남을 사랑하는 일도 없고, 남에게 사랑받는 일도 없을 걸세. 그게 내 저주지. 나는 자네를 죽이지 않겠네. 그러나 그건 호의 때문은 아니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죽였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을 죽이겠지. 그러나 나는 필요 없는 살인은 안 하네. 잘 가게, 마미야 중위. 1주일 후에는 자네는 여기를 나가서 나홋카로 향하겠군. 즐거운 여행이 되길! 이제 다시는 자네를 만나는 일도 없겠지.”

-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감는새> 中



드디어 <태엽감는 새>를 다 읽었다.

중간에 책을 한 권 잃어버리기도 하고, 어쨌든 꽤 긴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분량을 읽기가 힘든 책이었달까. 읽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 공허해지고, 우울해지고, 외로워졌다. ‘태엽감는 새’ 님은 항상 혼자였다. 직장도 나가지 않았고, 거의 아무와도 만나지 않았고, 대화하지도 않았다. 아니 누군갈 만나거나 대화하는 일이 있더라도, 혼자 있는 것 보다 썩 나은 상황이 아니었다.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 마저도 가위로 잘리듯 툭 끊어지고 말았다. 손에 잡히는 정확한 이유도 없이, 어떤 싸움과 다툼도 없이. 몇가지 희미한 징조들만 스쳐 지나갔을 뿐. 손에 잡히지 않는, 확실하지도 않은 관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가운데에, 그는 많은 것들을 빼앗겨 버렸고, 다시 찾으려는 과정에 자기 자신마저도 빼앗겨 버린 것 같다. 절망적이다.

마미야 중위의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는데, 그가 보리스를 죽이려고 하는 장면을 읽고 잠들었는데 정확히 그 상황이 꿈 속에서 플레이되었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약간 술에 취한 채 기분이 좋아 보이는 보리스와, 그를 죽이려고 총을 꺼내는 마미야 중위. 실탄 두개를 건네며 나를 죽이라고 말하는 보리스와, 그 두 발을 모두 실패한 마미야 중위와, 그에게 저주를 내리는 보리스. 나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마미야 중위의 떨리는 눈빛과, 보리스의 의연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의 공기와 이미지는 내 뇌리를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이로서 하루키가 쓴 소설은 모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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