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8월, 2013

이사

누군가 만나서 얘길 하면 눈물이 뚝뚝 흐를 것 같고. 집에 혼자 있기도 싫고. 술을 마시기도 싫은 기분이라. 퇴근하면 저녁식사도 거르고 곧장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모 카페에서 직거래 매물을 하나 본 뒤에 그 근처 부동산을 도는 식이었다.

월요일. 경사가 심한 만큼, 꼭 그만큼 좋은 집과 나쁜 집의 격차가 너무 심했던 한남동은 첫 날로 아웃. 한 번은 꼭 살아보고 싶은 동네였는데 내가 거기서 이상적으로 거주하려면 회사는 신사동 어디쯤, 월세는 한 달에 150쯤 낼 수 있어야 그 이상적인 포인트가 나올 것 같았다.  버스로만 출퇴근해야 한다는 리스크때문에 마음이 더 가질 않았다.

지친 마음으로 친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더니 신사동 어디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고. 택시를 타고 갔더니 4000원이 채 나오지 않는 가까운 거리. 거봐. 회사가 신사동이어야 한다니까. 월요일부터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셨다. 담배도 피웠다. 머리가 너무 짧지 않냐는 말에 일행은 '전혀 전혀 짧지 않다고 더 짧을 줄 알았다고 잘 어울린다고' 진심으로 말해주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얘기할 수 있었는데 힘든 마음에 결국 조금 울고 말았다. i 오빠를 알고 지낸 건 벌써 4-5년은 된 것 같은데 그 오빠 앞에서 눈물을 보인 건 처음인 것 같아서 조금 창피했다. 

화요일. 하루 종일 겨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지쳐서 침대 위에 쓰러져 천장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여기저기 문자를 보내서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태어나서 그런 짓을 한 건 처음이라 친한 사람들이 조금 놀란 눈치였다. 나도 다음 날 창피해서 죽을 뻔 했지만 이내 이 정도는 흑역사도 아니지 뭐. 하고 자기 합리화 했다. 

수요일. '처음에 생각했던 그 동네' 에 가서 몇 군데의 집을 봤는데 깨끗하지만 지금 우리집의 1/2만한 크기로 날 경악케 하거나. 도저히 살만한 집이 아닌 곳을 보여줘서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예산은 지금 살고있는 집 보다 두 배로 늘었는데. 원룸 크기의 방이라니. 이사가는 걸 포기할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역시 저녁을 거른 상태여서 상수역에 와서 간단히 맥주를 한 잔 했다. 

목요일. 왠지 이 집을 봐야할 것 같다는 느낌이 계속 오던 집이 있었는데, 목요일 점심 때 겨우 시간 난다고 하셔서 점심을 거르고 보러 갔다. 내가 본 집 가운데 가장 괜찮았다. 서울살이 11년인데 이 정도 느낌이면 대충 맞다고 봐도 되고. 예산도 딱 맞는 예산. 위치도 딱 원하는 위치. 바로 계약을 할까, 하다가 짧게 여행을 갔다가 금요일 저녁에 오신다기에 일단은 그 때 까지만 생각을 해 보기로 했다.

금요일. 지금 회사에서 걸어 10분거리에 같은 예산의 집이 하나 있어서 보러 갔다. 크기는 목요일의 집보다 조금 작거나 비슷했으나 테헤란로 뒷 길이라 음식점과 술집들이 섞여있는 블럭에 위치해 있었다. 전체적으로 집이 짜임새 없어보인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좀 걸렸고. 도심에 집이 위치한다는 점은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 있어서 망설여졌다. 어쩔까 하다가 조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퇴근 후 계약금을 마련해서 목요일의 그 집에 가서 계약서를 썼다. 

계약서를 쓰고 상수동 집까지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집에오니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사를 가면 당분간 상수동은 못 오지 않을까. 이렇게 먼데. 

지금 살고있는 집을 부동산과 인터넷에 내 놓았더니 금세 사람들이 연락을 해 왔다. 괜찮은 조건의 집이니까 금방 나갈 거라는 걸 안다. 느낌에 내일 쯤 누군가가 계약서를 쓸 거 같고. 이사날짜를 확정짓고 이삿짐 센터의 견적을 받아야겠지. 이사갈 집에 새로 살 가구와 가전제품을 생각하고. 이사갈 집의 평면도를 지금 집의 평면도와 비교하며 가구의 배치를 생각하고. 그런 일을 하면서 일요일 저녁을 보냈다. 

이사를 준비하고 바쁘게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몸을 혹사시키며 주초보다 나은 멘탈의 주말을 보냈지만.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다가도 아무렇지 않은 순간에 눈물이 날 때가 지금도 있다. 앞으로도 가끔은 있겠지.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다가올 시간이 겹치고 겹쳐져 결국은 희미해질 뿐이다. 지금까지 내게 있었던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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