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11월, 2013

iTunes Radio + 듣는 일상



어릴 때 라디오를 정말 좋아했었다. 최소한 오후 8시부터 새벽2시까지는 라디오를 끼고 살았고 몇 시에 어떤 방송국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지 아무렇지 않게 외워서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라디오에 써 보낸 편지는 최소한 1000통은 넘었을 것이다. 내 글이 채택되어 방송이 된 적도, DJ 와의 전화 연결을 해 본 경험도 당연히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어릴 때' 라 함은, 손 편지로 사연을 써 보내고 '보이는 라디오' 따위는 상상할 수 없었던 약 20년 전부터 10년 전까지 쯤을 의미한다.

나는 음악을 정말 좋아했지만 용돈이 넉넉하지 못해 다양한 음반을 사서 들을 수 없었다. 대신에 라디오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큰 채널이 되어주었다. 잠시나마 "나도 음악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고 꿈꾸었던 일도, 나와 비슷한 취향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PC통신을 시작하게 된 일도, 어쩌면 음악 그리고 라디오가 최초의 시드 역할을 했다. 많은 편지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글 쓰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돌 가수들이 라디오 DJ 데스크를 하나씩 차지하기 시작했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도 모자라 실시간 SMS을 통해 DJ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식으로 그 쪽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나는 20대 초반에서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심야엔 라디오를 듣기보단 다른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프로야구를 보러 다니고, 열심히 연애도 했다.

자연스럽게 마치 정해진 일 처럼 라디오라는 매체와는 거리가 생겼다. 부산이 아닌 서울의 라디오 주파수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고, 언제 누가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 알 수 없어서 포털사이트를 검색해야 했다. 그러다 가끔 라디오를 틀면 너무 시끄럽고 유치하거나, 어색함이 컸다. 도무지 예전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기 힘들어서 오래 듣기가 힘들었다. 겉으로는 라디오가 예전같지 않아,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라디오 안의 무언가가 변한 것 보단 내가 변한 쪽이 좀 더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하면서, 팟캐스트 쪽이 내가 기억하던 라디오와 비슷한 정서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내 취향에 맞는 팟캐스트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들으면 그만이었고, '녹음' 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원한다면 여러번 반복해서 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팟캐스트는 '음악' 보다는 '토크' 위주일 수 밖에 없었다. 저작권 때문이었다.




올해 9월, iOS7에 iTunes Radio라는 기능이 발표되면서, 나는 다시 '라디오'를 듣게 되었다. 주파수를 맞추고 DJ가 음악을 소개하는 그 옛날의 라디오는 아니지만,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카테고리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 필요하다면 언제든 다른 방송국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수없이 많은 채널이 준비되어 있다. 내가 접하지 못했던 좋은 음악을 소개받기도 하고,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음악을 듣게 되기도 한다.

사실 난 음악에 있어서는 '보수파'에 가깝다. 좋아하는 뮤지션도 많지 않고, K-Pop 으로 분류되는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지도 않고, 모험을 즐기는 편도 아니다. 보통은 늘 듣던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편안해 하는 쪽인데, 그래도 가끔은 '이거 좋은 음악들이야, 네가 좋아할지도' 라고 떠먹여주는 음악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과거에 내가 신뢰하는 라디오 DJ들이 그 역할을 했다면 이젠 아이튠즈 라디오가 꽤 적절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채널을 바꾸고 찾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아직 이거다! 싶은 아이튠즈 라디오를 많이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며칠 전부터 듣고 있는 Retro FM - 70's Rock 는 낮시간에 일하면서 듣기에 딱 적당하게 편안해서 무척 좋다. 잊고 지냈던 귀에 익은 음악들을 계속해서 틀어준다. 아이튠즈 창을 '미니플레이어'로 줄여서 모니터 구석에 두고 예쁜 앨범커버를 구경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 정말 20년 전에 라디오 듣던 그 느낌이 조금은 되살아난 것 같다. 음악을 소개해주는 DJ의 멘트는 없지만. 다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큰 채널' 로서 아이튠즈 라디오가 다가와 준 사실이 무척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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