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2월, 2014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보고싶다, 듣고싶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에버노트에 만든 목록의 양은 길어지기만 한다. 나의 이해할 수 없는 점 중에 하나가 새로운 컨텐츠를 접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걸 무척이나 부담스러워 한다는 사실이다. 용기가 필요하다. 일단 발을 담그면 그 뒤부터는 조금 쉬운데. 그래도 어렵다. 본 적 없는 영화, 드라마, 만화, 책, 해본 적 없는 게임. 미루다가 결국 이 만큼이나 쌓여버렸다. 이 부담의 근원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어떤 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두려움. 그 안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게 있을까봐 불안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것들 사이에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게 자주 발견되기 때문이고. 그걸 별로 내색하고 싶지 않아서.

반대로 읽었던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과 했던 게임을 반복해서 하는 것, 봤던 영화와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는 건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리는 느낌이 싫으면서도 편안하고 안정적인 기분이 된다. 재밌는 부분은 계속 보고 웃을 수 있고, 슬픈 부분은 계속 슬퍼할 수 있다. 나는 그렇다. 기분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봤던 것을 반복해서 보는 쪽을 택한다. 갑자기 닥쳐오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어떤 감정 같은 것을 대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도 요즘 여러가지로 좀 여유가 생겼는지 모험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겨우 그런 게 모험이라니? 라는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이 할 테지만) 만화 <실연 쇼콜라티에>와 그 것을 원작으로 한 일드. 만화 <은수저>와 그 것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그래픽 노블 <파란색은 따뜻하다>, 그리고 그 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곧 볼 예정. 영화로는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소설 밀레니엄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아무생각 없이 나열하고 보니, 어째 읽은 책들이 모두 영상물과 페어를 이루고 있다. 역시나 갑자기 한 쪽(특히 영상으로 제작된 쪽)만 보면 어쩐지 힘들어서 좀 더 내가 받아들이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책을 먼저 택한 게 드러나고 말았다. 나도 참 어쩔 수 없군. 


02 2월, 2014

설 연휴 보내기, 오븐드라이 토마토, 바질페스토 카펠리니

이번 설 연휴의 목표는 '집에서 재충전' 이었다. 내게 연휴는 항상 '어딘가로의 여행' 으로 계획되기 일쑤여서 생각해보면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만 며칠 씩 있었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4일이나 집에만 있었던 건 정말 1년 이상 된 일일지도. 하지만 연말부터 돈도 좀 많이 썼고 집에서만 노닥거리고 싶은 마음도 좀 들어서 이번엔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부산 집엔 2월에 내려가는 걸로 말씀드렸고.

친구들은 모두 고향에 내려가있어서 별다른 약속도 없었다. 밀린 집안일과 물건 정리도 좀 하고. 늦잠도 늘어지게 자고, 책도 읽고, 퍼즐도 하고, 게임도 하고, 미드도 좀 보고, 잠깐 영화도 보러 나가고, 커피도 마시고 하면서 혼자 시간을 보내니 참 좋다 생각하면서도. 이런 걸 좋아해도 되나 하는 걱정도 슬며시 들었다. (...ㅠㅠ)

마트에 가서 잠깐 장도 봤다. 혼자 살면 채소와 과일을 잘 안 챙겨먹게 되는 편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일부러라도 챙겨먹는 편이다. 일단 좋아하기도 하고. 특히 샐러드(생 채소)는 내 안에 게이지가 분명히 있어서 일정 시간동안 안 먹으면 채워줘야 한다는 느낌이 분명히 든다. 자주 구입하는 품목으로는 채소와 과일의 중간 쯤 있는 것 같은 토마토가 있는데. 많이 달거나 시지도 않고, 껍질을 깔 필요도 없고, 씨가 나오지도 않으며, 생으로 먹어도 좋고, 파스타 등 볶음 요리에도 잘 어울리고, 다이어트에도 좋고, 몸에도 좋고 (...)

... 뭐 어쨌든 이번에는 방울토마토 1kg 짜리 큰 팩을 사서 2/3 정도 오븐드라이 토마토를 만들어보았다. 반으로 잘라서 종이 호일위에 얹고 120도, 2시간 쯤 컨벡스 기능으로 구워(말려)주기만 하면 됨. 리큅 같은 건조기가 없어도 가능하다. 처음에 90도로 하다가 영 온도가 낮은 듯 해서 120도로 했는데, 이 쪽이 적절했다. 자신의 오븐에 맞게 타지 않을 정도로만 온도를 조절하고, 가끔 들여다보면서 이 쯤 하면 됐네; 싶을 때 내리면 된다. 취향에 따라 수분을 바짝 말려도 되고. 나는 촉촉하게 수분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내렸다.




구워진 토마토에 바질+올리브오일을 부어서 유리병에 담았다. 분명히 700g 정도를 구웠는데 만들고보니 한 주먹거리 (...) 작은 유리병에 다 들어갈 정도가 되어서 좀 허무함. 어차피 오븐에 렉이 3개나 있는데 나는 왜 소심하게 한 판만 구웠는가! 다음에 싸게 파는 토마토를 발견하면 잔뜩 사와서 오븐 3칸 꽉 채워 구워야겠다고 생각. 어차피 그냥 오븐에 넣고 잠깐씩만 들여다 보면 되는 거니까 복잡한 일도 아니다. 

근데 이거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달고 맛있어진다! 가끔 싱거운 방울토마토를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런 걸로 만들면 좋을듯? 익혀서 먹는 쪽이 영양상으로도 더 좋다고 하고. 구워진 토마토는 피자에 얹거나 샐러드나 파스타에 넣어 먹으면 된다. 토마토 즙이 베어든 올리브오일도 그대로 샐러드 드레싱으로 활용 가능. 

올리브오일로 볶는 간단한 파스타를 만들 때 토마토가 있으면 항상 넣는 편이라, 이번에도 토마토 본 김에 파스타를 볶아보았다. 면도 2분이면 익는 카펠리니, 토마토도 이미 구워져 숨이 죽어 있으니, 5분 안에 초스피드로 가능하다. 면이 얇으니 오히려 손이 더 빨라야 한다. 여유있게 만들고 싶으면 보통 스파게티 면을 쓰면 되지만, 그래도 다 해서 15분은 안 걸릴 듯. 

센 불에 물+소금1T 올리고, 옆엔 약불에 팬을 올린다. 팬엔 저 위의 토마토+올리브오일1T, 마늘을 썰어 올린다. 베이컨도 있어서 조금 넣었다. 마늘이 타지 않을 정도의 불을 유지하고 물이 끓으면 카펠리니를 넣어 익힌다. 2분이면 익는 면이니까 시계를 볼 필요도 없다. 1분 정도 지났다 싶으면 바로 면을 옆의 팬으로 옮긴다. 면수도 약간. 집에 바질페스토(2T)가 있어서 넣었고, 그 뒤엔 바로 팬의 불을 세게 올려 30초-1분 쯤 빠르게 파스타를 볶아준다.  

바질페스토는 옵션이니 없어도 그만이다. 바질페스토를 넣지 않았다면 접시로 내리기 전에 올리브오일1T 정도를 추가로 넣는다. 이 쪽이 올리브오일 향을 느끼는 데에 좋으니까. 어차피 올리브오일+마늘+파스타+소금 외에 다른 모든 건 옵션이다. 토마토, 베이컨, 페페론치노, 치즈, 앤초비 등등. 있다고 모두 다 넣는 것도 이상하다.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냉장고 사정에 따라 넣고싶은 걸 넣는다. 



바질페스토때문에 파스타가 녹색으로 보여서 재밌다. 바질페스토는 아이허브에서 구매했던 것. (링크 -185g, $5.35) 녹색에 가까운 질 좋은, 진한 올리브유를 갖고싶기도 한데 아직 이거다! 싶은 걸 찾지 못했다. 수입식품코너에 가도 종류만 너무 많아 뭐가 뭔지 모르겠고. 소면보다 더 얇아보이는 카펠리니는 롱파스타중에 가장 얇은 파스타로, 내가 좋아하는 파스타 중 하나. 코스트코에서 한 박스 (...) 를 사서 쟁여두고 먹는 우리집 디폴트 파스타(이자 주식...?). 2분이면 익는다는 점과 얇은 면의 식감이 맘에 든다. 하지만 대중적이지는 않으니 누군가에게 만들어 주면 '이게 뭐야!!!' 할 까봐 손님용 파스타(링귀네 or 페투치네)는 따로 사 두는 편. 아직 나 말고 카펠리니를 언급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거의 없다. 'ㅅ' 

설날과 전혀 무관한 음식들을 먹으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명절의 훈훈함과 후유증과 전혀 무관한 저편에서 흘려보낸 연휴가 이제 다 지나가고 하루 남았다. 방학같고 좋았는데. 여행가지 않고 집에서 노는 연휴도 좋다는 걸 새삼 발견하기도 했고. 슬슬 현실로그인을 해야하려나 싶다. 다음 연휴는 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