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12월, 2015

게임에 대한 리트머스 종이

페이스북에 썼다가 지우고 블로그로 옮긴 글.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공정하고, 젠더 이슈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그 밖의 최근 사회적 이슈에 대해 상식적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은 굉장히 소수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게임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사람을 솎아내면 더 줄어든다. 아주 미묘하게 성희롱인듯 아닌듯한 말이 슥 지나가는 위화감처럼,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게임에 대한 혐오가 지나가는 순간이 있다. 그 말들이 분명히 바늘처럼 스치지만 대부분의 순간 나는 입을 다무는 쪽을 택한다. 뿌리부터 다른 사람들이고, 난 그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왔을텐데, 내가 몇 마디 보탠다고 뭐 달라질까. 극단적인 예를 들어 내가 LGBT라면, 호모포비아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차피 모두에게는 자기 자신이, 자기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건 그렇게 솎아내고 솎아내도 말과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가끔 아니 자주 회사때문에 힘들어하고, 우울해하고, 또 이 바닥이 거지같다고 얘기하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더 들어맞는 곳을 찾지 못하겠다. 회사는 야비하게도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로망의 실현' 을 대가로 나의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 것 같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 이번에도, 많이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겠지.

최근에 약간 알게모르게 작은 상처들이 쌓였고, 나름 진지한 마음으로 쓴 글인데 쓰고 보니 중2스럽긴 하네. 참고로 술 마시고 쓰는 글 아니다.

01 10월, 2015

친구와 바르셀로나 여행 중

9월 25일부터 10월 2일까지, 바르셀로나를 여행중이다. 

혼자하는 여행과 같이하는 여행은 참 다르다. 혼자 여행하면 누군가와 같이 오지 않은 게 아쉽고 누군가와 같이 오면 혼자 오지 않은 게 아쉬운 부분이 생긴다. (이건 누구와 함께 와도 마찬가지니까 이 부분은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누구와 함께인지, 혼자인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장소로 여겨지기도 해서, 누구와 함께 왔던 장소라면 다시 한 번은 혼자 오게 된다. 가능하면 꼭 그렇게 한다. 

혼자 여행하는 나는 입에 거미줄을 칠 기세로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시간의 여유 덕분에 나 자신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평소에 못했던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외롭지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보통의 일상에서는 잘 없는 시간이라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재충전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이번 바르셀로나 여행도, 혼자 왔다면 이런 걸 했겠지, (동행인이 있는 지금처럼) 이런 건 못 했겠지, 를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또 쉽게 훌쩍 오기 힘든 곳이라 더 그렇다. 아마도 혼자 왔다면 한 밤 중에 BAR에서 이것저것 주문해가며 술 마시는 건 못 했겠지. 하지만 혼자 다시 온다면 이런 걸 해 보겠다. 

시우타데야 공원에서, 고딕지구 노천 카페에서, 광장 벤치에서 시간을 낭비해가며 사람구경하기. 허락된다면 담배도 좀 피고.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조깅, 수영, 뒹굴거리기. 뒹굴거리는 게 지겨워지면 크루즈타고 바다 구경하기. 해양박물관 카페에서 커피마시기. 구시가지를 길 잃을 기세로 지도 없이 아무렇게나 헤매고 다니기. 아침일찍 아무 바에나 들어가서 커피랑 아침식사하기. 여행기간동안 까딸루냐 음악당의 모든 공연 보기. MACBA, CCCB 등등 현대미술관 관람하기. 음 또 뭐가 있을까.

이제 여행의 종반부. 못 해본, 그래서 아쉬운 것들을 이래저래 떠올리고 있다. 조만간 다시 올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한다. 그 때는 또 지금의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05 8월, 2015

바쿠만 (2008-2012)


바쿠만 / BAKUMAN / バクマン。/ 글 오바 츠구미, 작화 오바타 타케시 

-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소년점프에 연재되었던 만화, 총 20권 완결.
- 2012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3기 75화 완결 
- 2015년 영화로 제작

소년 점프에 연재하는 만화이면서 소년 점프에 연재하는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고, 만화이면서 만화를 그리는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스토리 작가와 작화를 분담해서 그리고 있는 만화인데 만화 속에서도 스토리 작가와 작화를 분담해서 그리는 내용을 소재로 하고있다. 100%는 아니어도 실제 소년 점프의 이야기와 실제 작가 자신의 얘기가 들어가게 되는 게 당연. 오바타 타케시의 작화를 좋아하고 특히 데스노트를 좋아했으니까 그들이 다시 만든 바쿠만도 미루다가 읽게 되었다.

특이한 소재인데, 전체적으로는 배틀물의 구조를 따르고 있어서 신기함. 만화 속 슈진x사이코 콤비는 소년 타겟의 사도적인 왕도 배틀물을 늘 외치는데 어떻게 보면 정작 그들이 사도적인 왕도 배틀물의 주인공인 셈이어서 구조적으로 재밌고 기발하다는 게 이 만화의 장점. 게다가 그들의 '싸움 도구' 인 '만화 연재물' 전체를 묘사하지 않아도 되고 (묘사할 수도 없고) 배틀의 결과인 앙케이트 결과는 그냥 만화 속에서 통보 될 뿐이니까, 작가가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과정을 너무 날로 먹는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그래도 납득이 가게끔 구성되어 있으니 어쨌든 사도적인 왕도 배틀물로서는 성공인 듯? 아다치 미츠루 만화에 160km 을 던지는 초 고교 투수가 나오는 것 처럼, 오바타 타케시 급의 작화를 그리는 고교생 만화가도 나오는거지. 잠깐씩 힘있게 보여주는 작중작, 오바타 타케시의 필력에 감탄.

내 기준이지만 이 만화에는 대체로 너무 착한 사람들만 나온다. 다들 선의의 경쟁을 하고 다들 대체로 착한데다 파트너쉽까지 끝내준다. 시기 질투 흑막도 별로 없다. 흑막 캐릭터가 하나 나오기는 하는데 찍소리 못하고 금세 극 중에서 사라지며 함정카드 같은 편집자가 하나 있긴 하지만 나름 극 중 작가들의 성장을 도왔다는 점에서 나는 별로 나쁘게는 생각되지 않았다. 작품의 발암도는 상당히 낮은 편. 나는 히라마루가 특히 재밌어서 나올 때 마다 엄청 재밌게 봤음. 아즈마도 무척 좋은 인물이고. 

하지만 오바타 타케시 작가가 여자를 묘사하는 방식에 대한 비난이 누누히 있어왔는데- 이 만화 때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 만화에선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좀 거북한 구석이 있다. 여자들이 몇 명 나오긴 하는데 정상적인 여자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애초에 주인공 커플의 연애 방식도 좀 이상하지만 그거야 뭐 그렇다 치고 (만화니까), 여자들은 별 맥락 없이 지독한 순정파에, 혹은 얀데레. 여자가 너무 공부를 잘하는 건 귀엽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성적을 유지하는 여자애가 진짜 똑똑한거라던가... 작가의 여성관이 아니라 극중 슈진의 여성관이라는 의견(쉴드)도 있으나, 저런 가치관을 생전 처음 들어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헉 할듯. 

곧 영화로 개봉한다는데 보러는 갈 듯? 예고편의 액션들이 재밌다. 애니메이션은 75편이나 된다니 고민 중. 


19 7월, 2015

인사이드 아웃 (2015)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2015) / [네이버영화] [IMDB

오랜만에 흰 화면을 보니까 이것저것 할 말이 많이 생각나서 한참을 망설였는데. 가장 최근에 본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현재의 내 상태가 자연스럽게 비춰질 것 같아서 오랜만에 영화감상글을 써 본다.
 
<인사이드 아웃>이 개봉되자마자 타임라인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픽사 애니메이션이 공개되었을 때와 비슷한 비율로 폭발적인 찬사를 보냈다. 간혹 실망을 표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어쩐지 원래부터 픽사의 정서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 처럼 '보였다'. 즉 원래 픽사의 팬과, 팬이 아닌 부류가 있었을 뿐, 픽사의 팬이라면 이번 <인사이드 아웃>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 같았다.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한 얘기다. 요는, <인사이드 아웃>이 특별히 퀄리티가 떨어지는 '픽사'는 아니라는 데에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라는 전제.

나 역시도 그 전제에 동의한다. 영화는 재치있고, 예뻤고, 반짝반짝 빛났다.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는 뇌내의 활동들을 소재로 멋진 세계를 창조해냈다. 약간 지루한 구석이 있긴 했지만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눈물흘리고 찬사를 보내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전혀 '그들'의 감정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울었다는 데가 여기겠구나, 싶었지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려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스크린 속 인물들 + 대부분의 관객들이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공감대에 밀려 소외감이 엄습했다. 어린시절에 사랑받은 기억, 친구들과의 추억, 부모님에 대한 감정, 가족애 - 등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것들이고 영화는 그 전형적인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마음이 움직이고 감동할만한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냈다. 거기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닐까. 즉 이건 내 문제라는 것. 

영화를 보는 내내 - 내 감정의 구슬들은 파랑/녹색으로 가득하겠군, 저런 코어 기억따위 없는 내가 제대로 된 인간일 리 없지, 등등을 투덜거리게 되는 - 내 개인의 문제를 확인하게 되는 게 유쾌할 리 없다.

굳이 영화를 탓해보기도 했다. 너무 일반적인 백인 가정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나, 보아하니 아버지는 IT스타트업 종사자로 투자를 받게 되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게 된 거 같은데, 그 사실을 (어린이의 시선이긴 하지만) 영화에서 이렇게까지 불행해보이게 포장하다니.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불평은 좀 하고싶었다. 샌프란시스코가 얼마나 좋은 곳인데! 아니 뭐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니까. 갑작스러운 이사로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매우 불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갈등없는 가정이었으면 고작 이 정도로... 그래 뭐 내내 행복하게 산 게 죄는 아니니까.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건 라일라의 머리 속 감정의 캐릭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모든 갈등이 해결된 뒤엔 다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을 보여줘야하니까 최소한 '이 정도의 레벨'이 되는 전형적인 가정을 소재로 하는 게 당연하겠지. - 결론 : 내가 너무 삐딱하구나. 진짜 영화 하나 가지고 피해의식 쩌네. -_-;

저런 복잡한 감정 없이 그냥 남들 우는데서 울고, 감동하는데서 감동하면서 이 영화를 보고싶었는데 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그건 힘들 것 같고. 영화를 보며 이런 종류의 소외감(또는 박탈감)을 느낀 것도 오랜만이라 기록해둔다. 별로 좋은 아웃팅은 아닌 것 같지만.

26 5월, 2015

새로운 국면

  5월이 되었(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 새로운 장소 등을 만나는 일이 있었다. 보통은 그게 부담이나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마련인데 최근의 일들은 의외로 그렇지가 않아서 좀 재밌었다. 거의 하지 않았고 (이젠 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던) 홍대에서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해 뜰 때까지 술마시기도 해보고, 절제를 모르고 신나게 놀다가 필름도 끊겨보고, 다음 날 카드값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래 뭐 즐거웠으면 된거잖아, 라는 생각으로 퉁치기도 했다. 그래 뭐 즐거웠으면 된 거잖아. 그게 어디 쉽나.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 - 지극히 내 사생활 여집합 영역 - 에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등을 만나는 일이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 쪽은 굉장한 부담과 스트레스 그 자체라서 인생이란 참 공평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프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노답]. 난 모티베이션이 중요한 인간이고 작은 것에도 반응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걸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 열심히 해서 그럭저럭 좋은 성과를 낸다고 해도 흠집을 찾아내 비난당할 것 같은 종류의 스트레스. 여름이 다 지나갈 때 까지 꼼짝없이 힘들 것 같은데. 또 다른 새로운 국면이 있을까. 기다리고 있는데.

  덕통사고는 예고없이 오는것이라더니. 예상치못하게 모 농구만화에 푹 빠졌는데, 그 중 한 캐릭터 및 그의 목소리가 나를 강타하여 덕질에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자타공인 목소리 성애자인 나에게 좋아하는 성우 하나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했어! 라는 입장이긴 하지만. 살짝만 발을 담갔을뿐인데 이 쪽 세계는 왜 이렇게 넓고 깊나요. 온갖 캐릭터송을 찾아듣다가, CD를 다섯 장 쯤 샀고, '그 사람'이 연기한 다른 캐릭터가 등장하는 아니메를 찾아보기 시작. 지금까지 좋아하는 캐릭터가 없었던 건 아닌데 대부분 짱 쎈 여캐들이라 (마토이 류코, 미카사 아커만 등) ... 근데 취향저격 목소리에 치이면 답이 없는 거였어. 난 그런 사람이었어. 옅은 파스텔톤의 차가운 듯 단정한 목소리... 가 좋네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랑 몇 마디 하더니 사람이 왜 이렇게 됐냐고, 연애세포가 다 죽은 것 같다고 그러면 안된다고 되게 뭐라고 혼냈다.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몇 년 전의 나는 이렇지'는' 않았지. 근데 돌이켜보니 참 신기하더라고. 그 땐 참 겁이 없었구나, 나. 그렇게 멍하게 생각하다보니 또 좋지 않은 생각까지 닿아서 그걸 떨치느라 잠깐 힘들었다. 네가 모르는 게 있어. 쉽게 이겨낼 수 없으니까 트라우마인거지. 이겨낼 생각이 없는 게 아니야.  



08 5월, 2015

선택이 필요한 순간

일주일 사이에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었고, 아주 오랜만에 만난 사람도 있었다.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었고,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해 뜨기 직전까지 놀이터에서 수다도 떨었다. 요샌 잘 없는 일이었는데,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엄청나게 많이 웃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날 좋게 봐주신, 어쨌거나 좋은 소식이 있어서 감사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덕통사고를 당해서 갑작스레 새벽까지 애니를 보기도 하고. 대체로 즐거웠다. 중간중간에 놀다가 PC방에 들러서 혹은 새벽 2시에 PC앞에 대기해서 일처리를 해야 하긴 했지만.

그렇게 연휴 5일을 놀다가 회사로 돌아왔다. 연휴 뒤라 챙길 것도 많은 와중에 전화도 너무 많이 오고 부르는 사람도 많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잠깐 카페테리아에서 요즘의 라노벨이나 꽂혀있는 애니메이션 얘기를 하는데 자꾸 일이랑 연결이 되는거임.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언급하시며 진심으로 제휴를 해보라고 한다거나.

그러다 문득. 그래 여기가 원래 내 자리였지, 내 일상이었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역시 난 회사가 편하고 좋아!] 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난 5일의 연휴가 일종의 판타지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땐 분명히 잠깐이지만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솔직한 얘기를 할 수 있었고, 일이랑 상관 없이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뭐 그런, 다른 곳에서는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종의 덕업일치 비슷한 걸 시도할 수 있는 게 확실히 마약같은 측면이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좋지 않은 환경을 눈감아주고, 자꾸만 중독되고 마는 건 아닌지.

그러다가 예정되었던 몇 가지 이슈가 가시화됐고 그 과정에서 또 질린 기분이 되고 말았다. 웃으면서 살갑게 굴지만 사실 모두가 서로를 경계하는. 다들 쉴 새 없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던 거, 나도 마찬가지지만. 새삼스럽지만 역시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달콤한 부분들이 있어서 박차고 나갈 수가 없다. 잠깐이지만 매맞는 아내가 이혼하지 못하는 거랑 뭐가 달라? 라는 생각을 했다. 판단이 쉽지 않다.



27 4월, 2015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

# 과거에는 분명히 쉬웠던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려워진다.

# 뇌를 통과하지 않은 듯한 말이 입 밖을 나가는 빈도가 약간 늘었다. 분명히 내가 의도하지 않은 말인데 하게 되거나, 비 정제된 말을 하게 되어 스스로 약간 놀라는 것. 내가 말한 게 분명한데 방금 이건 누가 말한거지? 싶은 것. 이건 좀 아닌데, 싶은 단계를 넘어 이제 좀 조심해야 하나, 싶은 단계에 들어왔다. 정확한 원인과 치료방법 같은 건 잘 모른다. 치료? '병' 이라는 딱지를 붙일 만큼 심각한 상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경이 쓰인다, 많이. 말을 줄이고, 생각을 늘리고, 귀를 기울일 것. 외로움과 허전함을 쓸데없는 것으로 채우지 말 것.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 일들. 답답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난 왜 이렇게 나약한 건가. 

# 날 아는 사람들은 날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난 사실 잘 울고, 어떤 부분에 있어선 그다지 계획적이지도 않고, 고집도 세다. 싫증도 잘 내고, 혼자있으면 쓸쓸하다는 감정도 느끼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해줄 수 있는 건 다 한다. 굳이 이런 글을 써 보는 건 보통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가 위에 언급한 그 어떤 것도 내 특성이라고 잘 생각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 나는 그냥 이 정도의 선에서 만족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 이상을 원한 적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나가서 모든 걸 망치고 싶진 않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어정쩡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내 자존감이 낮다는 증거였다. 다른 사람이 같은 태도로 있었다면 난 분명히 단호한 목소리로 충고했겠지. 그리고 그걸 따르지 않으면 바보취급했겠지. 어쨌든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는 자격이 없다. 깨끗하게 인정했다. 

# 조용히 내 발 끝을 바라보고 당분간은 어디에도 고개돌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9월 바르셀로나 여행을 갈 때 까진 그저 조용히 숨 죽이고 가만히 있도록. 감정을 아끼고 마음을 쓰지 말 것.


14 4월, 2015

2015년 2/4 분기의 시작, 일상 잡담 : Dark Side

# 이사 D-4

3월 어느 날 연봉계약을 했고, 다음 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집이 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고 그 다음 날 판교 어느 부동산에 가서 새로 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 진도가 안나가 답답하던 일들이 미리 정해놓은 순서가 있었던 것 처럼 물 흐르듯 하나씩 진행되었다. 

부산을 떠나 살게 되는 (C대앞-S대앞-H대앞1-H대앞2-양재) 여섯 번 째 집. 이사 갈 집을 얘기하면 거기 월세 너무 높지 않냐는 얘길 많이 하는데, 사실 낮진 않지. 하지만 솔직히 지금 사는 집과 유지비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나는 발생하는 유동자산을 가치가 불확실한 미래의 자산에 투자하는 것 보단 현재의 확실한 가치 투자/비용처리하는 쪽으로 비중을 두고 있어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마음이 쓰리긴 하지만 - 견딜만 하다. 모든 건 기회비용이다. 10-20만원 차이 정도, 다른 쪽에서 줄이면 그만이다. 우선은 교통비가 가장 많이 줄어들거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과 싸우며 (저축을 하고 대출을 갚고) 일반적이라면 일반적인 노선 위를 걷고 있는데. 나는 또 나 하고싶은대로, 내 좋을 대로 생각하고 자기합리화하며 탈선하고 있는 걸지도. 20대 중반의 그 때처럼. 나이를 한 살 먹고 나니까 작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에서 이래라 저래라 말들이 많아지고 있다. 탈선하는 내가 안되어보이는지. 어차피 내 인생은 내껀데.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큰 사고 치지 않고, 윤리적으로도 큰 문제 없이 살고 있으니까. 내가 원한다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들도 있으니까. 그냥 좀 내버려 둬 줬으면 좋겠는데.

# 사람 

다행인 것 - 만나서 편하게 술 한 잔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냥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닌, 진짜 맛있는 술을 마시면서 거기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함께 공연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냥 문화생활이 아닌, 오늘 공연의 사운드가 얼마나 역대급이었는지 시시콜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같이 만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거기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 함께 여행가자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젠가 자신의 삶을, 배우자를 찾아 떠날 것이다. 그 후에 나는 외롭게 남겨지지 않을까 라는 불안함이 - 인정하기 싫지만 - 분명히 존재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웃프다. 어쨌든 사실이니까 솔직해지기로 했다. 

앞서 말한 불안함때문인지, '지금의 관계'를 지키고 싶은, 혹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과 대화할 때면 나도 모르게 굉장히 서투른 사람이 되고 만다. 쓸데없는 말을 하고,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고서 금방 후회한다. 덕분에 요즘 종종 이불 하이킥 중. 

일  

나는 왜 척박하다면 척박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는가. 일반적으로는 하는 일에 비해 연봉이 적다고들 하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어째서 견디는가 - 라고 묻는다면 역시 바보같은 답변 '게임을 좋아하니까' 에 도달하게 된다. 사실이다. 싫어하는 일을 이렇게 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좋아하고, 재밌어 하고 있다. 그러니까 견딜 수 있다. 

작년 초 까진 불안정을 동반한 약간의 허세가 분명히 있었다. 해외 컨퍼런스 자료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콘솔게임 뉴스들을 확인하고, 눈에 뜨는 해외 모바일 개발사들의 포트폴리오를 조사하여 보고하고, 국내 양산형 모바일 게임들을 슬쩍 비웃기도 하고. 잉여력이 충만하여 눈에 띄는 게임들은 미리부터 발견해서 플레이할 수 있었다. 회사 PC에서 Steam 계정은 항상 로그인된 채 메신저의 역할을 일부 담당했다. 

하지만 직군을 변경한 후 잉여력은 급속도로 바닥을 쳤다. 부팅만 늦어지는 Steam 메신저를 지웠고 다채로운 뉴스들이 나에게까지 흘러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별다른 감흥도 없이 시시한 모바일 게임들을 기계적으로 플레이하며 시간을 떼우기도 했다. 그게 뭐 어떻다는 생각조차도 안 했다.

좀 웃긴 일인데, 얼마 전 모뉴먼트 밸리를 플레이하며 눈물이 찡할 정도로 감동. 내가 좋아하는 게임은 이런거라구!!!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던 현실이 환기되는 바람에 괜히 슬퍼졌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좋아하니까 견딜 수 있어, 라고 말할 수 있는걸까. 스스로에게 물어봤자, 지금은 여기다. 여기가 최선이다. 더 나은 곳이 없다. 지금은. 

# 일2 

농담삼아 인맥과 열정페이로 버티고 있다고 말하곤 하는데, 점점 농담이 아니게 되고 있다. 678월에 이슈가 지나치게 많다. 업무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호시탐탐 틈이 보이기만을 노리고 있다. 그래, 인생은 실전이지, 나도 알아. 틈을 노려 크게 한 방 먹이면, 속 시원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너무 피곤하다. 감정소모가 너무 크다.

# 고민

변함없는 인생의 디폴트 고민. [다이어트] [영어공부] [제 2의 직업] 어느 새 새벽 두 시.






17 3월, 2015

2015 서울국제마라톤 풀코스 (42.195km) 완주

2월 15일 마라톤 32km 완주 이후, 3월 15일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도전하게 되었다. 내가 참가한 경기는 3월 15일에 열린 서울국제마라톤(동아 마라톤)으로, 국내 대표적인 마라톤 대회 중 하나이다.

32km를 완주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지만 다음날 신기할정도로 아무런 후유증이 없었기때문에, '내가 32km 에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구나 + 거기서 10km만 더 뛰면 되겠지' 라는 자신감을 조금 얻을 수 있었다. 실제로 훈련 때는 나보다 좋은 퍼포먼스를 보였고 32km 기록도 나보다 좋으셨지만, 32km대회 이후 다리의 통증이 몇 주 간 가시지 않아 힘들어한 분들이 계셨다. 

다만 가지고 있는 운동화가 장거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32km 완주 이후 회사에서 운동화를 지원 해 주었는데, 내 발 모양과 맞지 않아 1시간 정도만 조깅하면 슬며시 발이 아파왔다. 새 운동화를 사기에는 적응 기간이 모자라 그냥 32km 때 신었던 운동화를 신고 뛰게 되었다. 러너들이 많이 사용하는 전용 깔창 같은 것도 없는 채로. 뉴비인만큼 템빨도 중요한데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한 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아쉬운 포인트. 

경기 전에 코스를 확인했다. 적당히 광화문-동대문-잠실대교-석촌호수-잠실운동장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광화문에서 출발하여 을지로와 청계천을 한 바퀴씩 훑고 종로를 지나 군자역까지 갔다가, 어린이대공원과 서울숲을 지나 잠실대교를 향하는, 생각보다 훨씬 끔찍한 코스였다. 어쨌거나 틈틈히 코스를 보며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도망칠 수는 없으니) 가까운 지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도전이라고 얘기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입을 모아. 설마 진짜 하는거냐고. 그게 가능은 한 거냐고. (...) 


그 외엔 나름 2주 정도 금주를 지켰고, 경기 전 3-4일은 다이어트는 잠시 잊고 탄수화물 위주의 음식을 먹었다. 경기 전날은 미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6시 30분까지 광화문에 집합하기로 했는데 잠을 설치다 5시 반에 겨우 일어났다. 냉장고에 있던 쉬폰 케익 한 조각을 먹고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새벽부터 광화문은 왜 가냐고 물어서, 마라톤 때문이라고 대답했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젋은 아가씨가 풀코스가 왠말이냐며 (...) 그러면서 한참동안 자신의 운동 경력에 대해 얘기했다. 그다지 듣기 힘든 얘긴 아니었지만 잠을 거의 못자 피곤한 상태에 긴장감이 겹쳐 성의있는 리액션을 해드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쨌거나 택시기사 아저씨의 화이팅을 받고 광화문 광장에 내렸다. 새벽이라 아직은 추운 날씨였는데, 광화문 광장은 짧은 러닝쇼츠를 입은 마라토너들로 북적였다. 




아직은 휴일 꿀잠을 자고 있을 친구들의 단톡 창에 실시간 기록을 조회할 수 있는 URL을 남기며, 완주하고 미래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남겼다. 

1-10km : 01:03:49
초반에 길이 좁고 사람이 많아 뛰던 페이스대로 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약속한 페이스보다 느린 페이스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10km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페이스를 맞추던 동료들과도 10km는 딱 상쾌하게 뛰기 좋겠다는 농담까지 하면서 뛰었다.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가 내내 근처에 계셨다. 

11-15km : 01:37:14 (+00:33:25)
이게 하프마라톤이면 진짜 좋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2시간 정도 뛰고 끝내는 거면 뭔가 많이 뛴 느낌도 나면서, 크게 힘들지도 않고, 시간상의 부담도 없으며, 불가능에 대한 두려움,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풀 코스는 다르다. 최소한 4시간 이상은 달려야 한다. 해 본적이 없으니 가능할지 없을지도 알 수가 없다. 그래도 32km때는 12km에서 처음 뛰기를 멈추었는데 이번엔 15km까지도 멈추지 않고 뛰었다. 속도가 늦춰질지언정. 같이 뛰던 일행들과 멀어져 혼자가 됐다.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보면서 뛸 수 있는 데까지 따라가보기로 했다.  

16-20km : 02:12:42 (+00:35:28)
18km에서 처음, 뛰기를 멈추고 말았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미리 준비했던 iPod Shuffle을 꺼냈다. 혼자 운동할 때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갑자기 힘이 솟는 기적을, 마라톤 풀 코스 주로에서도 기대하고 싶었다. 템포가 빠르고 좋아하는 음악들로 만들어 둔 리스트가 부스터의 역할을 해 주길. 최소한 혼자 달리는 지루함과의 싸움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하프에 도달했을 때, 32km 때의 하프와 분명히 느낌이 다른 걸 느꼈다. 딱 절반까지 왔다. 온 만큼만 가면 된다. 막막함보다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느낌이 좀 더 컸다. 

21-25km : 02:52:22 (+00:39:40)
힘들다, 힘들다, 힘들다. 다리가 아프다. 하지만 최소한 이 구간이 1달 전 32km때 보단 쉽게 느껴지고 있잖아? 그 땐 죽을 것 같았잖아.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거의 걷기만 했잖아. 근데 나 지금은 뛰고있네. 최소한 쌍욕이 나오는 컨디션은 아니네. 조금만 더 견디자. 라고 생각했다. 군자역에서 방향을 바꿔 남쪽으로 달릴 때 살짝 기분이 좋았다. 빨리 한강을 보고 싶었다. 

26-30km : 03:33:39 (+00:41:16)
21-25km 보다 26-30km이 차라리 나았다. 중반이 아니라 진짜 종반에 가까워지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30km만 지나가면 앞으로 10km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빨리 가자. 빨리 가서 30km를 밟자.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뛰었다. 하지만 사실 다리가 미친듯이 무거웠다.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실제로 힘들다고 멈추어 봤자 별 소용이 없는 게 맞다. 멈춘다고 안 아픈 것도 아니고. 뛸 때가 오히려 덜 아프다. 

31-35km : 04:15:34 (+00:41:54)
위의 기록으로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5km를 40분대에 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구간은 정말 죽도록 힘들었고 몇 백 미터 씩 걷기도 했다. 한 달 전 나의 32km 기록은 4시간 4분이었는데, 이번 32km 기록은 대략 3시간 49분 정도였다. 1달 사이에 무려 15분이나 단축했다! 이만큼이나 성장했다! 대단한 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견딘 것 같다. 35km 지점에 다 와서 터덜터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코치님이 멀리서 뛰어오고 계셨다. (35km 지점에 계셨던 것 같다) 하필 걷고 있을 때라 엄청 부끄러웠다. 코치님이 그래도 완주는 했네? 라며 시간 여유 있다고 응원해주셨다. 

36-40km : 05:02:45 (+00:47:11)
동아마라톤 마의 구간. 잠실대교를 건넜는데 바로 잠실운동장으로 직행하지 않고 석촌동과 삼전동을 한 바퀴 돌고 잠실로 가게 되는 코스여서, 미리 코스를 확인하지 않으면 다들 멘붕을 겪는다고 한다. (덕분에 이번 기수 사람들은 미리 코스를 완벽하게 숙지하여 그 멘붕은 피할 수 있었다) 다 왔는데. 괜찮은데. 마음은 너무너무 달리고 싶은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다왔다. 여기서부터 걸어만 가도 완주는 할 수 있다. 어차피 목표는 완주였다. 도로도 아직 개방되어 있다. 이 정도면 선방한 거 아닌가. (도로의 차량 통제시간은 보통 완주 5시간대를 기준으로 정해져 있다) 40km 표지판을 봤을 때의 기분은 정말... 

41-42.195km : 05:18:36 (+00:15:51)
그래도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서 뛰었던 구간. 결승점에 걸어서 들어갈 수는 없잖아. 잠실 종합운동장 입구에는 마지막 1km 라는 표지판이 크게 세워져 있었다. 운동장 입구가 가시거리안에 딱 들어온 순간 iPod에서 거짓말처럼 대항해시대2의 ost, Close to home이 흘러나와서 잠깐 눈물이 날 뻔 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이라지만 달리기와 어울리지도 않는 이 음악을 왜 여기에 넣었지. 이 순간을 위해서였나. 아 뭐야. 어쨌든 이제 다왔다. 진짜 끝이다. 근데 의외로 죽을 것 같지는 않잖아. 괜찮네. 그래 뭐, 의외로 할만하네. 뭐 그런 생각들을 했다. 운동장에 들어와 마지막 한 바퀴는 온전히 뛰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뛰었다. 



 


42.195km 완주 메달과 함께 역대급 fitbit 트래킹 기록. 어쨌든 아쉬운 건 역시 5시간 안에 들어왔어야 했다는 생각. 

그래도 32km를 한 달 사이에 15분이나 단축했으니까, 다시 뛰면 5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을지도? 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해 버렸다. 템빨도 더 올리고 체중도 좀 더 줄이고 하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 아깝잖아. 지금까지 훈련한 게 있는데. 한 번으로 모두 휘발시키기엔. 이제 겨우 시작인데. 

생각해보건대 크로스핏을 통해 나름 꾸준히 해 왔던 코어운동들이 마라톤 훈련에 좋은 기초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힘은 코어에서 나오는 게 확실히 맞다. 주로에서 큰 힘이 되어주었던 퍼퓸, 아라시, 라르크엔시엘 여러분들께도 이 영광(ㅎㅎ)을 돌리고 싶고. 마지막으로 농담삼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으로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그거 농담 아니고 사실이었음. 하루키 상 존경합니다. 당신 뭐에요, 정말. 글쓰는 사람이면서. 

03 3월, 2015

2015년 1/4 분기의 마지막, 일상 잡담 : Light Side

# 농한기 (비수기)

친구가 지금 시즌을 '농한기' 에 비유를 했는데, 적절하다 싶다. 여름방학 오프라인 행사와 성수기를 해치우고 나면 곧바로 추석, 그 다음은 할로윈, 지나고 나면 겨울 성수기 준비, 크리스마스 연말 시즌을 지나고 나면 연초, 그리고는 설 연휴와 평가시즌이다. 그럭저럭 굵직한 일들을 마무리 짓고 나면 리얼 월드는 새학기, 여기도 슬슬 한가해진다. 5월 어린이날 시즌과 여름방학 시즌을 준비하기 전 까진 여유가 있다. 눈치를 보면서도 긴 티타임을 갖고, 칼퇴근을 한다.

특별한 뭔가가 없다면 - 작년과 같은 무시무시한 조직개편 이슈가 없다면 - 라이브서비스를 하는 우리로선, 그래 뭐, 다들 심심한 시즌이긴 한 거다. 처음으로 사업실에서, 마케터로서 한 쿨을 돌았다. 내년 이맘 땐 조금 긴 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로 영화를 보거나, 애니를 보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업계, 같은 직군에서 일하는 전 남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래 너도 심심하구나. 이해는 해.

# 마라톤

3월 15일 동아마라톤 풀코스 (42.195km) 완주를 준비하고 있다. 2주도 채 남지 않은데다 일이 한가해서 요즘은 일, 게임보다 운동 생각을 더 많이 하는 마라토너 모드. 처음엔 10km를 달리는 것도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는데 신기하게도 32km를 완주하고 나니까 42.195km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기록은 5시간 완주가 목표지만 아마 좀 넘기지 않을까 싶다. 일단은 포기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목표.

그리고 요즘 드는 욕심은 공기가 맑고 풍경이 아름다운 다양한 코스를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과, 유명한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 트라이애슬론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 등등. 어쨌거나 여럿이 함께 팀을 이루어 하나의 미션을 준비하는 건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만약 이런기회가 없었다면 나는 절대로 마라톤 풀코스 완주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

# 음식

대회를 앞두고 식사조절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고, 요즘은 조리하지 않는 음식들에 약간 빠져있다. 특히 연어와 아보카도가 너무너무 좋음. 생 연어 100g과 아보카도 1/2개를 비슷한 크기로 착착 썰어 그릇에 담고, 생 김에 싸서 와사비 간장을 살짝 찍어 먹는 게 요즘의 아침식사. 배가 많이 고프면 밥 반 공기 정도를 곁들이는 것도 좋은데, 사실 연어와 아보카도만으로도 완벽한 조합이다. 공동구매를 통해 구입한 연어는 꽤 만족스러워서 앞으로도 꾸준히 구매해서 먹을 생각. 점심은 바나나+사과, 요거트+뮤즐리 등등을 돌려가며 먹는다. 저녁은 약속이 있으면 밖에서, 없으면 집에서 연어+아보카도. 질릴 때 까지는 이 조합을 계속 하고 싶은데.

이러면 무슨 정크푸드는 전혀 좋아하지 않는 식생활 결벽증 환자 같이 느껴지지만 -_- 실상 내게 치킨, 피자, 파스타, 떡볶이, 빵, 케이크, 초콜렛에 대한 애정은 내려놓기 힘든 것이라, 어느 날 갑자기 쿠키 한 봉지를 다 까먹기도 하고. 한 밤 중 배달의 민족 앱을 들여다보며 주문할까 말까 고민하다 몇 번은 유혹에 지기도 하고. 다만 확실히 건강한 식생활을 하다 보면 그 동안 지켜온 게 아까워서라도 생각이 덜 나는 것도 맞다. 습관은 중요하다.

# 오타쿠 

오타쿠란 뭔가 아주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용어기도 하지만, 나같은 늅늅의 입장에선 '현자' 와 같은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어서 조금은 동경의 대상이기도 (...) 하지만 특정 일반에선 힙스터, 트렌드세터의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는지 (이해 못 한다면 스킵) 내가 보기엔 전혀 오타쿠가 아닌 사람이 '제가 오타쿠라서 하하하' 하는 걸 보고있으면 왠지 좀 웃김. 나도 꼬인거지 뭐.

나는 건담도 극장판만 겨우 본 정도이고, (그것도 Z건담은 보다가 졸아서 다시 봐야 함) 턴에이는 보지도 않았고. 기체들을 조립하면서, 얘가 어디에 나오는 뭐하는 앤지 찾아보는 정도라 건덕후;라는 말은 농담으로라도 못하겠다. 전 그냥 샤아 아즈나블이 좋습니다. (...)

# 이사 

빨리 가고싶은데 우리 집이 안 나가서 홀딩 상태. 아으어어어어... 빨리 좀 나가라 좀...


22 2월, 2015

2/18 - 22 연휴동안 한 일

이번 5일간의 설 연휴는 간만에 여행 일정도 없는 '자취방 뒹굴뒹굴 잉여잉여'가 가능한 시간으로서, 2월 내내 이 연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특히 1월에 매주 주말 오프라인 행사 진행, 동생 결혼식, 마라톤 동계훈련 등의 일정으로 주말도 없이 보내야 했으므로 더더욱.

아래는 5일의 잉여시간동안 한 일들을 기록해 본 것. 별로 한 게 없네;; 
이사갈 작정으로 건프라와 레고박스도 다 봉인해둬서 조립도 하나도 못하고. 휴일이 5일쯤 더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난 게으름과 폭식으로 5kg 쯤 더 살이 찌겠지...

  • 애니메이션 
    • 소드아트온라인 1기 2쿨 (15-25) 
    • 싸이코패스 1기 2쿨 (12-22)
    • 싸이코패스 2기 (1-11) ...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뭐랄까 음... 하여튼 내가 본 그 애니메이션 컨텐츠 중엔 가장 잔인하고 신경을 긁는 작품이었음. 성적인 요소가 없진 않은데 모에 요소는 참 더럽게 없는 작품. 평소에 아니메를 전혀 보지 않고 일드를 즐겨 보는 사람에게 오히려 추천할만한 것 같기도. (...) 
    • 오리진 개봉에 발맞추어 퍼스트건담 극장판 복습을 하고 싶었으나 귀차니즘으로 실패

  • 만화책
    • 바람의 검심 (읽고있음)

  • 게임
    • 클로저스 : 미스틸테인 (캐릭터 만들고 조금 플레이 하는데 자꾸 강종됨) 
    • HAYDAY : 마을 꾸미기 (...) 가능한 한 Tom을 2시간 마다 사용함 
    • Clash of Clans : 틈틈이 확인함. 트로피 점수 1800 돌파함
    • 재배소년 : 금화 2배 이벤트, 12시/6시 핫타임 이벤트를 꼬박꼬박 챙김
    • 쌓아놓은 스팀 게임을 하고 싶었으나 PC앞에 앉는 게 너무 힘들어 실패

  • 영화 (결국 하나도 못 봄) 
    • 이미테이션 게임
    • 킹스맨

  • Apple 과 놀기
    • iTunes 에 밀린 CD 리핑 (굉장히 잉여로울 때나 가능한 일 1) 
    • 달리기에 좋은 재생목록을 심사숙고 정리 (굉장히 잉여로울 때나 가능한 일 2) 
    • Aperture 사진 정리 (굉장히 잉여로울 때나 가능한 일 3) 
    • iPhone6+ 백업 및 app 정리
    • iPhone5 매입처 알아보기 (...)

  • SNS
    • tumblr 만듬 : 사진만 올리는 용도로
    • naver blog 다시 만듬
    • 헛되고 헛되다...

▲ 자전거 탄 목요일과 주로 뒹굴거린 수/금/토/일요일
토요일은 약속 있어서 아주 약간 상승한 걸음수.


  • 약속
    • 국내 PC방 점유율 1위 게임을 서비스하는 모 회사의 직원을 만나 대담...
      ... 은 아니고 무한 수다. 각자의 회사와 업계 얘기(ㅋㅋㅋㅋ)를 하다 보니 시간이 모자랐음. 자주 만나야겠음. (ㅋㅋㅋㅋ) 

  • 식사조절
    • 저어어어어언혀 하지 못함. 
    • 집에서 커피 한 잔도 안 마심. (덕분에 시도 때도 없이 폭면) 

  • TV
    • 삼시세끼 5회 (...) 차승원 만세! 
    • TV는 가면 갈 수록 재미가 없다. 
      • 드라마는 전혀 보지 않음. 
      • (내 기준에선) 재밌는 예능도 거의 없음. 무한도전, 라스 정도만 의리로...
      • 요리쇼는 왜 이렇게 많아진걸까. 여튼 (내 기준에선) 대부분 재미 없다. 

16 2월, 2015

2015 아!고구려 마라톤 32km 완주

작년 8월 회사 마라톤 포럼에 참여한 이후 의미있는 첫 번째 장거리 도전. 10km 대회도 참여하긴 했었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었고 1시간 안에 들어와야 할 텐데, 정도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32km는 과연 이게 되려나, 싶은 미지의 영역이랄까. 코스를 봐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자전거로는 달려본 적이 있는데, 내 기준에선 자전거로도 32km는 만만하진 않다. 보통 한 번에 20-25km 정도를 타는 일이 많으니까.

내가 한 번에 가장 길게 걸어 본 거리는 25km로, 제주도 올레길이었다. 나는 욕심을 내서 트래킹 앱을 체크해가며 걸었고 대략 5시간 정도 걸렸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32km를 4시간에 들어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코치님들과 윗 기 분들은 '안 뛰어봐서 감이 없을 뿐이지, 당연히 가능할 거다' 라는 얘기를 해 주셨다.

허세돋지만 자기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를 읽었다. 하루키가 처음으로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는 부분이었다. 하루키는 100km를 11시간 42분에 완주했다. 그러면서 42km 정도는 아주 가벼운 일 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그냥 빨리 뛰고 끝내버리고 싶다- 느니) 하지만 내게 32km의 도전이 하루키의 100km 도전과 오히려 같았다. 그에게 42km 이후가 미지의 영역이듯, 나에겐 10km이후부터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1-12km. 10시 20분부터 달리기 시작해서 초반엔 1km 6분 정도의 페이스로 굉장히 상쾌하게 달렸다. 옆 사람과 얘기도 하고 여유가 넘쳤다. 1시간도 되기 전에 첫 번째 암사대교 반환점을 돌았다. 이전에 10km를 달릴 땐 7km에서 처음 한계가 와서 멈춰서서 걷다 뛰다를 반복했는데 이 번엔 페이스가 여유있기도 했지만 12km까진 한 번도 쉬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다.

12km. 그룹에서 이탈해 속도가 뒤쳐지기 시작했다. 작년에 맨 처음 마라톤 훈련을 시작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숨이 차다는 것' 이었다. 하지만 이제 장거리 위주의 훈련을 계속하다보니, 숨이 차는 일은 거의 없고 하체 근육과 발바닥이 아파오는 게 가장 컸다. 이번 대회에선 12km에서 그 한계가 처음 왔고 잠깐 멈춰 서서 걸으면서 다리 근육을 풀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게 하프마라톤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면 2시간 초반대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15km. 첫 번째 반환점 암사대교를 지나 다시 잠실로 돌아왔을 때, 겨우 절반밖에 달리지 않았다는 게 심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회사 마라톤 참가자 중에 내가 뒤에서 두 번째라는 사실도 솔직히 약간 자존심상했다. (스스로에게 쉴드를 치자면 이 그룹에 여자가 네 명 뿐이다 ㅠㅠ) 그래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km. 카보샷이 너무 먹기 싫어서 식수대의 이온음료와 코치님이 주시는 포도당 캔디로 당분을 보충하며 달렸다. (끝난 뒤에 싫어도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20km 구간은 SETEC이었는데 마침 서울 코믹 행사중이어서 코스프레를 한 아이들 수백명이 양재천 변에 내려와 있다. 그 옆을 러닝 타이즈와 싱글렛을 걸친 마라토너들이 달리고 있는 풍경이 조금 재미있었다.

22km. 두 번째 반환점이 도저히 나타나지 않아서 쌍욕이 나올... 뻔 했는데 인사팀 분들을 만나 다시 뛰는 시늉을 했다. 뛰다 걷다- 에서 걷는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난 하프가 한계였나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님이 나타나서 상태가 어떠냐고 물으셨는데, 사실 걷는다고 실격되는 것도 아니니 -_- 완주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태이긴 해서,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1그룹 멤버들이 반환점을 돌아오는 게 보였고, 서로 인사와 응원을 주고받았다. '대체 반환점 어디에요!!' 라고 말했더니 '아직 멀었다' 는 말이 되돌아왔다.

24km. 아니나다를까 정말 반환점은 우리 집 근처였다. 아니길 바랬는데 진짜 시민의 숲. 이제 이 먼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막막했다. 진심으로. 자전거를 타고 수도 없이 달렸던 양재천변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잠실나들목을 찍고 오며 '오늘도 운동을 했네. 뿌듯하군.' 하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앞으로 8km. 한 시간만 가볍게 조깅한다고 생각하자. 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25-30km. 무념무상으로 뛰다 걷다를 반복했고 식수대를 만나면 이온음료를 마셨다. 저 다리까지만 뛰자- 그러고 다시 조금 걷고. 다시 다음 다리가 보이면 저 다리까지만 뛰자- 그러고 다시 조금 걷고를 반복했다. 코치님이 또 나타나서 상태를 물어보셨는데, 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내 운동화가 장거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사자마자 지적받았던 건데, 32km 완주하면 러닝화를 회사에서 주기로 해서 -_- 그냥 이번까지만 버티자는 생각이긴 했다. (...)

30-32km. 솔직히 힘들다기 보다는... 아니 힘들었지만. 지겹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지치면서 자세가 흐트러졌기 때문인지 종아리와 무릎이 아파왔다. (원래 여기가 아프면 안 됨) 골인지점이 코앞에 보이는데도 멈춰서서 걷고 싶었다. ㅠㅠ 하지만 걸어서 골인할 수는 없고 조금만 참자는 생각으로 골인. 인사팀 분이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셨다. 좀비처럼 걸어서 메달을 받았다. 골인 시각은 대략 4시간이었다. 이후에 문자로 날아온 기록은 4시간 4분이었는데, 마지막에 게으름을 피운 게 뒤늦게 후회되었다. 그래도 4시간 안에 들어왔어야 했는데.




이제 3월 15일에 동아마라톤 풀 코스 도전을 하게 되고 그 때 까지 1달의 시간이 남았다. 1달 동안 열심히 훈련하면 지금보단 나아질까? 라는 의문이 있는데 역시나 코치님들은 당연히 나아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 달리기에 유리하도록 위를 줄이고, 최대한 체중을 줄이는 게 지금으로선 관건인 것 같고. (체중이 줄어들 수록 확실히!! 달리기가 편하다. 훈련량보다 이 쪽이 좀 더 체감이 컸다 ㅠㅠ) 제대로 된 러닝화도 장만하고. 그러면 음. 5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을까. 오늘 달린 거리보다 10km 를 더 달려야 한다는 게 아직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02 2월, 2015

이사를 결정하기까지


갑자기 덜컥.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아래는 그 의식의 흐름이다.

1. (1/29 밤) 가끔 하는 일
  • 스마트폰 부동산 app, 사이트를 통해 대략적인 예산을 설정해놓고 이 집 저 집 구경을 한다. 자취 경력 어언 1x년에 달하고 있으므로 인터넷 매물의 대부분이 뻥이라는건 나도 잘 알고 있지만 대략적인 매물/시세 체크의 차원에서. 
  • 그러다가 판교역 모 오피스텔의 매물을 발견하게 된다. 알아보니 지난 해 11월부터 입주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관련 매물이 무척 많은 상황. (얼마전까지만 해도 판교역 역세권에는 오피스텔 매물이 없었다)
  •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당 오피스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2. 현재 살고있는 집 
  • 장점 
    • 회사까지 4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 집에서 전철역, 버스정류장까지는 빨리 걸으면 10분 안에 갈 수 있다.
    • 시세 대비 집이 넓다. (현재 건물에 혼자사는 사람이 나 뿐) 
    • 집안 내 모든 옵션이 내 꺼다.
    • 가장 편리한 대중교통은 신분당선으로, 판교역까지 9분이면 갈 수 있다. 
    • 집에서 5분 거리에 이마트와 코스트코가 있다.
  • 단점
    • 회사까지 40분이나 걸린다. 
    • 집에서 전철역, 버스정류장까지는 10분이상 걸린다. 
    • 쓸데없이 집이 넓어서 청소하기가 너무 귀찮다. 연속 야근 시즌일 땐 정말 처치곤란 상태까지 간다. 
    • 집안 내 모든 옵션이 내 꺼라서 이사비용이 많이 든다. 특히 에어콘의 경우 철거-재설치비용이 보통 10만원 이상. 
    • 게다가 지금 에어콘 고장난 상태. 
    • 가장 편리한 대중교통은 신분당선으로, 1정거장만 타도 2000원을 내야 한다. 
    • 집 근처에 이마트와 코스트코 말고는 이렇다할 게 없다. 이마트도 사실은 인터넷 이마트몰을 더 많이 사용한다. 들고오기 힘들어서. 코스트코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3. 새로 발견한 집
  • 장점 
    • 신축이다. (내가 첫 주인)
    • 풀옵션이다. (천장형 에어콘 2대, 드럼세탁기, 전기쿡탑, 붙박이장, 샤워부스 등)
    • 세대 별 개인 창고를 제공하며(!!) 그 밖에도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들이 마련되어있다. (택배보관소, 단지 내 휘트니스 센터, 상업시설 등) 
    • 오피스텔이므로 지금 집보다는 보안이 더 좋다. 
    • 전세 매물도 꽤 있으며, 전세대출을 할 경우 지금 월세보다 적은 유지비가 가능하다. 
    • 판교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이며, 판교역에서 회사까지는 무료 셔틀버스가 있다. 어쨌거나 차비가 비약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 판교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이므로, 강남역까지 20분 안에 갈 수 있다. 
    • 근처에 공원도 있고 하천도 있으며 곧 현대백화점이 생길 예정이며, 판교역 근처에는 남부럽지 않은 상업시설이 가득하다.
  • 단점 
    • 지금 집보다 평수가 작다. 하지만 청소하기 편하겠지?
    • 홍대나 이태원에 놀러가기 성가시지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 친한 친구들과 집이 더 멀어지지만 어차피 지금도 멀잖아... 
    • ...또 뭐 있지? (생각 안남)

4. (1/30 낮) 주변에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다
  • 친구들의 반응 : 뭐야, 좋잖아? 이사해. 곧 하겠네. 언제 해? 
  • 회사 동료들의 반응 : 뭐야, 좋잖아? 이사해. 빨리해.
  • 부모님의 반응 : 회사 근처면 좋지 뭐. 이사해. 

5. (1/30 퇴근 후) 집을 보러 가다 
  • 다른 구조로 두 군데 봤는데 다 괜찮았다. 무려 예산도 적절하게 딱 맞았다.
  •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2배로 강해졌다. 
  • 주말동안 고민을 해 보기로 한다. 

6. (1/31 고민) 이사를 위한 난관
  • 현재 집의 계약기간은 2015년 9월에 끝난다.
    • 어차피 지금이 집 내놓기 더 좋은 시즌이며, 지금 집이 조건이 좋아서 한 달 안엔 분명히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다. 
  • 계획에 없던 이사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 일본 여행 한 번 안 가면 됨 (........) 
  • 집이 갑자기 작아지는건데 괜찮을까. 
    • 현재 집의 에어콘, 책장, 가스렌지, 냉장고, 세탁기, 대형책장은 이사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처분하거나 놓고 갈 예정이다. 
    • 현재 집의 물건들을 살펴보니 버리거나 처분이 가능한 물건이 상당했다. 이 것들을 모두 정리한다면 짐을 상당부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어차피 지금 집이 너무 넓다. 지금까지가 오히려 비효율이었다. 
  • 전세대출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설마 리젝트 되지 않겠지?
    • 월요일에 확인 가능
  • 나에게 맞는 시세의 매물이 모두 나간 건 아니겠지?
    • 월요일에 확인 가능 

7. (2/1) 이사를 위한 one step closer 
  • 최근 몇 년간 입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입을 것 같지 않은 옷들을 정리했다. 
  • 최근 몇 년간 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볼 것 같지 않으며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쓰지도 않은 책들을 정리했다. (알라딘 중고나라에서 보니 대략 6-7만원에 정리 될 수 있을 듯) 
  • 요즘 사용도가 굉장히 많이 낮아진 아이패드에어를 지인에게 팔기로 했다. 이 돈은 이사비용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 
  • 그 밖에 버릴 수 있는 물건을 굉장히 많이 발견했다. 좀 놀랐다. 나 물건 잘 버리는 사람이었는데 이게 다 뭐야. 내 스스로에게 실망이야..

8. (2/2~) 앞으로의 할일 
  • 주인집에 전화해서 이사에 대해 알릴 것. 
  • 이사갈 집의 매물을 빨리 확보하고, 최적의 조건을 탐색할 것. 
  • 전세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할 것. (만약에 혹시라도 한도가 나오지 않을 경우 월세로만 알아볼 것) 
  • 처분하기로 한 물건들 빨리 정리. 
  • 이사갈 집이 계약된 경우, 이사날짜 조정 여부 등을 확인할 것. 
  • 현재 집을 빨리 계약시키기 위해 여기저기에 홍보할 것. 조건이 나쁘지 않아서 어렵지 않게 계약될 것 같긴 하다. 
  • 계약 후 세입자가 사용하지 않을 경우 에어콘, 세탁기, 냉장고, 가스렌지를 일괄 매입할 업체를 찾아볼 것. 
  • 최종 이사날짜가 정해진 후 이사업체 정해서 연락할 것. 

30 1월, 2015

(30대 싱글여성의) 평판관리

최근에 몇 가지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장소가 회사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업무와 직접 관련은 없다는 것 등이 나를 더 불쾌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발생한 일들의 공통된 점은 나는 아무런 액션 없이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그런 일들이 발생했고, 나에게 와 부딪쳤으며, 나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

나는 아무런 액션 없이 가만히 있었는데. 그래도 내가 제공한 원인이라고 하면 '내가 30대 초중반의 싱글, 특별하게 예쁘지 않은 여성' 이라는 점 정도? 내가 결혼 했거나, 적당히 27살 정도이거나, 특별하게 예뻤다면 없었을 일? 그런 식의 열등감 넘치는 자격지심 같은 걸 가지는 게 싫어서 여러모로 곱씹어서 생각했는데 괜히 답답해지기만 해서 생각하기를 멈췄다. 오지라퍼의 대한민국이니 결혼했거나 남자거나 특별히 예쁘다고 하면 분명히 또 다른 카테고리의 기분 나쁜 일들을 겪겠지.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으니까, 뭐.

어쨌거나 33살쯤 나이를 먹고, 어쨌든 현재는 남자친구가 없고, 그렇다보니 남들은 별 생각없이 한 마디씩 하는 거겠지만 아무리 쿨하게 넘겨도 스트레스가 되고. 지금의 이런 조건을 가진 내가 지극히 '업무적인 관점에서' 누군가의 어설픈 업무처리가 못마땅해 신경질을 내도 히스테릭해 보인다는 사실 또한 불편하다. 설마-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더 놀랐고. 

뭘 해야할까. 먹은 나이를 뱉어 낼 수는 없으니- 어쨌거나 1) 외모를 가꾸고 2) 고깝지만 가능한 한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3) 부정적이고 즉각적인 감정표현을 자제하고 4) 좋은 업무 레퍼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정도면 되나. 뭐 또 있을까. 솔직히 그동안 4) 는 남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했는데, 나이먹을 수록 떳떳함과 쿨함(..)의 단순 현상유지를 위해 1) 2) 3) 의 중요성이 피부로 느껴지니 뭔가 어딘가 미묘하게 씁쓸한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