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2월, 2015

2015 아!고구려 마라톤 32km 완주

작년 8월 회사 마라톤 포럼에 참여한 이후 의미있는 첫 번째 장거리 도전. 10km 대회도 참여하긴 했었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었고 1시간 안에 들어와야 할 텐데, 정도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32km는 과연 이게 되려나, 싶은 미지의 영역이랄까. 코스를 봐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자전거로는 달려본 적이 있는데, 내 기준에선 자전거로도 32km는 만만하진 않다. 보통 한 번에 20-25km 정도를 타는 일이 많으니까.

내가 한 번에 가장 길게 걸어 본 거리는 25km로, 제주도 올레길이었다. 나는 욕심을 내서 트래킹 앱을 체크해가며 걸었고 대략 5시간 정도 걸렸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32km를 4시간에 들어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코치님들과 윗 기 분들은 '안 뛰어봐서 감이 없을 뿐이지, 당연히 가능할 거다' 라는 얘기를 해 주셨다.

허세돋지만 자기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를 읽었다. 하루키가 처음으로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는 부분이었다. 하루키는 100km를 11시간 42분에 완주했다. 그러면서 42km 정도는 아주 가벼운 일 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그냥 빨리 뛰고 끝내버리고 싶다- 느니) 하지만 내게 32km의 도전이 하루키의 100km 도전과 오히려 같았다. 그에게 42km 이후가 미지의 영역이듯, 나에겐 10km이후부터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1-12km. 10시 20분부터 달리기 시작해서 초반엔 1km 6분 정도의 페이스로 굉장히 상쾌하게 달렸다. 옆 사람과 얘기도 하고 여유가 넘쳤다. 1시간도 되기 전에 첫 번째 암사대교 반환점을 돌았다. 이전에 10km를 달릴 땐 7km에서 처음 한계가 와서 멈춰서서 걷다 뛰다를 반복했는데 이 번엔 페이스가 여유있기도 했지만 12km까진 한 번도 쉬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다.

12km. 그룹에서 이탈해 속도가 뒤쳐지기 시작했다. 작년에 맨 처음 마라톤 훈련을 시작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숨이 차다는 것' 이었다. 하지만 이제 장거리 위주의 훈련을 계속하다보니, 숨이 차는 일은 거의 없고 하체 근육과 발바닥이 아파오는 게 가장 컸다. 이번 대회에선 12km에서 그 한계가 처음 왔고 잠깐 멈춰 서서 걸으면서 다리 근육을 풀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게 하프마라톤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면 2시간 초반대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15km. 첫 번째 반환점 암사대교를 지나 다시 잠실로 돌아왔을 때, 겨우 절반밖에 달리지 않았다는 게 심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회사 마라톤 참가자 중에 내가 뒤에서 두 번째라는 사실도 솔직히 약간 자존심상했다. (스스로에게 쉴드를 치자면 이 그룹에 여자가 네 명 뿐이다 ㅠㅠ) 그래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km. 카보샷이 너무 먹기 싫어서 식수대의 이온음료와 코치님이 주시는 포도당 캔디로 당분을 보충하며 달렸다. (끝난 뒤에 싫어도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20km 구간은 SETEC이었는데 마침 서울 코믹 행사중이어서 코스프레를 한 아이들 수백명이 양재천 변에 내려와 있다. 그 옆을 러닝 타이즈와 싱글렛을 걸친 마라토너들이 달리고 있는 풍경이 조금 재미있었다.

22km. 두 번째 반환점이 도저히 나타나지 않아서 쌍욕이 나올... 뻔 했는데 인사팀 분들을 만나 다시 뛰는 시늉을 했다. 뛰다 걷다- 에서 걷는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난 하프가 한계였나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님이 나타나서 상태가 어떠냐고 물으셨는데, 사실 걷는다고 실격되는 것도 아니니 -_- 완주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태이긴 해서,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1그룹 멤버들이 반환점을 돌아오는 게 보였고, 서로 인사와 응원을 주고받았다. '대체 반환점 어디에요!!' 라고 말했더니 '아직 멀었다' 는 말이 되돌아왔다.

24km. 아니나다를까 정말 반환점은 우리 집 근처였다. 아니길 바랬는데 진짜 시민의 숲. 이제 이 먼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막막했다. 진심으로. 자전거를 타고 수도 없이 달렸던 양재천변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잠실나들목을 찍고 오며 '오늘도 운동을 했네. 뿌듯하군.' 하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우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앞으로 8km. 한 시간만 가볍게 조깅한다고 생각하자. 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25-30km. 무념무상으로 뛰다 걷다를 반복했고 식수대를 만나면 이온음료를 마셨다. 저 다리까지만 뛰자- 그러고 다시 조금 걷고. 다시 다음 다리가 보이면 저 다리까지만 뛰자- 그러고 다시 조금 걷고를 반복했다. 코치님이 또 나타나서 상태를 물어보셨는데, 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내 운동화가 장거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사자마자 지적받았던 건데, 32km 완주하면 러닝화를 회사에서 주기로 해서 -_- 그냥 이번까지만 버티자는 생각이긴 했다. (...)

30-32km. 솔직히 힘들다기 보다는... 아니 힘들었지만. 지겹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지치면서 자세가 흐트러졌기 때문인지 종아리와 무릎이 아파왔다. (원래 여기가 아프면 안 됨) 골인지점이 코앞에 보이는데도 멈춰서서 걷고 싶었다. ㅠㅠ 하지만 걸어서 골인할 수는 없고 조금만 참자는 생각으로 골인. 인사팀 분이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셨다. 좀비처럼 걸어서 메달을 받았다. 골인 시각은 대략 4시간이었다. 이후에 문자로 날아온 기록은 4시간 4분이었는데, 마지막에 게으름을 피운 게 뒤늦게 후회되었다. 그래도 4시간 안에 들어왔어야 했는데.




이제 3월 15일에 동아마라톤 풀 코스 도전을 하게 되고 그 때 까지 1달의 시간이 남았다. 1달 동안 열심히 훈련하면 지금보단 나아질까? 라는 의문이 있는데 역시나 코치님들은 당연히 나아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 달리기에 유리하도록 위를 줄이고, 최대한 체중을 줄이는 게 지금으로선 관건인 것 같고. (체중이 줄어들 수록 확실히!! 달리기가 편하다. 훈련량보다 이 쪽이 좀 더 체감이 컸다 ㅠㅠ) 제대로 된 러닝화도 장만하고. 그러면 음. 5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을까. 오늘 달린 거리보다 10km 를 더 달려야 한다는 게 아직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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