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5월, 2015

새로운 국면

  5월이 되었(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 새로운 장소 등을 만나는 일이 있었다. 보통은 그게 부담이나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마련인데 최근의 일들은 의외로 그렇지가 않아서 좀 재밌었다. 거의 하지 않았고 (이젠 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던) 홍대에서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해 뜰 때까지 술마시기도 해보고, 절제를 모르고 신나게 놀다가 필름도 끊겨보고, 다음 날 카드값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래 뭐 즐거웠으면 된거잖아, 라는 생각으로 퉁치기도 했다. 그래 뭐 즐거웠으면 된 거잖아. 그게 어디 쉽나.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 - 지극히 내 사생활 여집합 영역 - 에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등을 만나는 일이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 쪽은 굉장한 부담과 스트레스 그 자체라서 인생이란 참 공평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프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노답]. 난 모티베이션이 중요한 인간이고 작은 것에도 반응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걸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 열심히 해서 그럭저럭 좋은 성과를 낸다고 해도 흠집을 찾아내 비난당할 것 같은 종류의 스트레스. 여름이 다 지나갈 때 까지 꼼짝없이 힘들 것 같은데. 또 다른 새로운 국면이 있을까. 기다리고 있는데.

  덕통사고는 예고없이 오는것이라더니. 예상치못하게 모 농구만화에 푹 빠졌는데, 그 중 한 캐릭터 및 그의 목소리가 나를 강타하여 덕질에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자타공인 목소리 성애자인 나에게 좋아하는 성우 하나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했어! 라는 입장이긴 하지만. 살짝만 발을 담갔을뿐인데 이 쪽 세계는 왜 이렇게 넓고 깊나요. 온갖 캐릭터송을 찾아듣다가, CD를 다섯 장 쯤 샀고, '그 사람'이 연기한 다른 캐릭터가 등장하는 아니메를 찾아보기 시작. 지금까지 좋아하는 캐릭터가 없었던 건 아닌데 대부분 짱 쎈 여캐들이라 (마토이 류코, 미카사 아커만 등) ... 근데 취향저격 목소리에 치이면 답이 없는 거였어. 난 그런 사람이었어. 옅은 파스텔톤의 차가운 듯 단정한 목소리... 가 좋네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랑 몇 마디 하더니 사람이 왜 이렇게 됐냐고, 연애세포가 다 죽은 것 같다고 그러면 안된다고 되게 뭐라고 혼냈다.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몇 년 전의 나는 이렇지'는' 않았지. 근데 돌이켜보니 참 신기하더라고. 그 땐 참 겁이 없었구나, 나. 그렇게 멍하게 생각하다보니 또 좋지 않은 생각까지 닿아서 그걸 떨치느라 잠깐 힘들었다. 네가 모르는 게 있어. 쉽게 이겨낼 수 없으니까 트라우마인거지. 이겨낼 생각이 없는 게 아니야.  



08 5월, 2015

선택이 필요한 순간

일주일 사이에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었고, 아주 오랜만에 만난 사람도 있었다.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었고,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해 뜨기 직전까지 놀이터에서 수다도 떨었다. 요샌 잘 없는 일이었는데,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엄청나게 많이 웃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날 좋게 봐주신, 어쨌거나 좋은 소식이 있어서 감사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덕통사고를 당해서 갑작스레 새벽까지 애니를 보기도 하고. 대체로 즐거웠다. 중간중간에 놀다가 PC방에 들러서 혹은 새벽 2시에 PC앞에 대기해서 일처리를 해야 하긴 했지만.

그렇게 연휴 5일을 놀다가 회사로 돌아왔다. 연휴 뒤라 챙길 것도 많은 와중에 전화도 너무 많이 오고 부르는 사람도 많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잠깐 카페테리아에서 요즘의 라노벨이나 꽂혀있는 애니메이션 얘기를 하는데 자꾸 일이랑 연결이 되는거임.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언급하시며 진심으로 제휴를 해보라고 한다거나.

그러다 문득. 그래 여기가 원래 내 자리였지, 내 일상이었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역시 난 회사가 편하고 좋아!] 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난 5일의 연휴가 일종의 판타지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땐 분명히 잠깐이지만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솔직한 얘기를 할 수 있었고, 일이랑 상관 없이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뭐 그런, 다른 곳에서는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종의 덕업일치 비슷한 걸 시도할 수 있는 게 확실히 마약같은 측면이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좋지 않은 환경을 눈감아주고, 자꾸만 중독되고 마는 건 아닌지.

그러다가 예정되었던 몇 가지 이슈가 가시화됐고 그 과정에서 또 질린 기분이 되고 말았다. 웃으면서 살갑게 굴지만 사실 모두가 서로를 경계하는. 다들 쉴 새 없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던 거, 나도 마찬가지지만. 새삼스럽지만 역시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달콤한 부분들이 있어서 박차고 나갈 수가 없다. 잠깐이지만 매맞는 아내가 이혼하지 못하는 거랑 뭐가 달라? 라는 생각을 했다. 판단이 쉽지 않다.